10화. 예정대로

by 온새결

월요일 오전 11시.

수호타워 1층 커뮤니티 공간.

우진이 긴장한 얼굴로 테이블을 닦고 있다.

그의 앞에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팻말이 놓여 있었다.


“쉼표 상담소 - 진영동 성당 차우진 신부”


그리고 상담 신청서 한 뭉치와 따뜻한 차 한 주전자.


“좋아! 준비 완료.”


우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 앉았다.

시계를 확인했다.

상담 시작 시간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로비를 오가는 직장인들.

커피를 들고 급하게 걷는 사람들.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10분이 지났다.

20분이 지났다.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


우진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다 식어 있었다.


‘뭐, 오늘 첫날이니까… 아직 모르시는 거겠지. 괜찮아.’


12시.

상담 신청자는 0명.

우진은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지나가던 회사원이 힐끗 쳐다보다 갸우뚱했다.


“웬 신부님?”


우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귀가 조금 빨개져 있었다.


‘주님… 이건 조금 민망합니다…….’


바로 그때였다.


“신부님?”


익숙한 목소리에 우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나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하나 씨!”

“오늘 첫날이라고 하셔서 사진 좀 찍으러 왔는데…….”


하나는 텅 빈 상담 공간을 둘러보다가 우진의 처량한 모습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아무도 안 오신 거예요?”

“……네.”


우진이 작게 대답했다.

하나는 웃음을 참으려 애썼지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푸흡, 아니, 죄송해요. 웃으려던 건 아닌데…….”

“괜찮습니다. 저는 웃기긴 커녕 울고 싶지만요.”


우진도 덩달아 쓸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홍보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홍보요?”

“네, 이 팻말만으로는… 사람들이 뭐 하는 건지 잘 모를 것 같아요.”


하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직접 홍보해 볼게요.”


그녀는 테이블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무료 상담 진행 중인데, 혹시 직장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 계세요?”


그 말을 듣고 지나가던 30대 여직원이 멈춰 섰다.


“무료요?”

“네! 진영동 성당 신부님이 직접 상담해 주세요. 비밀 보장은 당연하고요.”


여직원이 우진을 힐끗 쳐다봤다.

우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음… 그럼 저 해볼게요.”


여직원이 조심스럽게 앉았다.


“감사합니다!”


하나가 환하게 웃으며 여직원에게 상담 신청서를 건넸다.

그리고 우진에게 윙크를 보내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 신부님 차례.’


우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여직원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


여직원이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상사 때문에 좀 힘들어서요…….”


30분 후.


“정말 고맙습니다, 신부님.”


여직원이 눈가에 남은 눈물을 훔치며 일어났다.

우진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에게 위로가 된 것 같았다.


“천만에요. 언제든 힘드시면 다시 오세요.”

“네, 꼭 그럴게요!”


여직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다.

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하나가 다가오며 웃었다.


“오 잘하시는데요!”

“하나 씨 덕분입니다. 혼자였으면…….”

“에이, 아니에요. 신부님 실력이에요.”


하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상담하시는 모습 멀리서 몇 장 찍었으니, 잠깐 건물 좀 둘러볼게요. 조사도 할 겸.”

“아, 네. 혹시 뭐 발견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하나가 향한 곳은 그때 봤던 금이 나 있던 1층 복도였다.

그녀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여기가…….’


지난번 봤던 균열.


“…….”


하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벽을 살폈다.

이상했다. 그 짧은 시간에 조금 커진 것 같았다.

그녀는 얼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메모 앱을 열어 적었다.


“10/28, 1층 복도 균열. 지난주보다 약 3cm 정도 증가 추정.”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연스러운 척 걸었다.

그때 하나 옆으로 작업복 입은 남자가 청소 카트를 끌며 지나갔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그 남자는 하나를 스쳐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인가…….’


건물을 둘러보다 1층 커뮤니티 공간으로 돌아온 하나.

우진은 상담자와 이야기 중이었다.

하나는 멀리서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하시네.’


상담이 끝나고, 우진이 하나에게 다가왔다.


“뭐 발견하셨어요?”

“네. 이상하게 금이 길어진 것 같아요.”


하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여기 보세요. 지난주랑 비교하면…….”


우진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정말… 하나 씨가 본 비전과 관계가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근데 이상한 건 확실하잖아요.”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주기적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요, 이건.”


하나가 말했다.


“네. 저도 상담하면서 틈틈이 둘러볼게요.”


그때 하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태수의 문자였다.


“하나야, 수호그룹 관련 옛날 기사 찾아봤는데… 좀 이상한 게 있어. 시간 되면 들러.”


하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신부님, 저 회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선배가 뭔가를 찾은 것 같아요. 수호그룹 관련해서.”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서 가보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하나는 서둘러 타워를 나섰다.

같은 시각 1층 복도.

청소 카트를 끌던 남자가 잠시 멈춰 섰다.

아까 하나가 사진을 찍던 곳.

남자는 벽을 가만히 바라봤다.


“…시작됐군.”


그는 낡은 노트를 꺼내 그 위치를 표시했다.

예상했던 지점이었다.


“예정대로야.”


남자는 청소 카트를 밀고 조용히 사라졌다.



1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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