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시사』 편집국.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선배님!”
이미 사무실에선 태수가 책상에 어떤 자료들을 잔뜩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 이것 좀 봐.”
하나는 태수 옆에 앉아 자료를 들여다봤다.
오래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한 서류들이었다.
“그때 네 말 듣고 지난 10년간 수호그룹과 관련된 사건 사고 기사들을 좀 찾아봤는데, 이렇게 모아 보고 나니까 이상한 점이 있더라고. 유독… 산재 사고가 많네.”
며칠 전 하나는 태수에게 수호그룹을 좀 조사해 봐야겠다고 미리 말을 했둔 터였다.
다세대주택 계단 붕괴 사고 이후, 수호건설의 시공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는 명분이었다.
사실, 타워에 조사를 자주 가야 하니 미리 깔아둔 밑밥 같은 핑계였는데…….
어쩐지 그 밑밥이 대어를 불러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눈이 자료를 빠르게 훑었다.
‘○○공장 화재 사고’
‘건설 현장 추락 사고’
‘설비 고장으로 인한 끼임 사고’
…
“그러게요. 좀 많네요.”
“그렇지? 근데 이것도 다가 아닐 거 아냐. 이거야 기사화된 것들이고, 실제로는 더 많을 텐데…….”
확실히 그랬다.
10년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어난 사고가 꽤나 많았다.
기사로 난 것만 셈해도 매해 두세 건꼴로 사람이 죽고 있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나는 혹시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르게 기사들을 훑었다.
그러다, 어떤 기사에서 하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극단적 선택.’
기사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장실습을 나가던 특성화고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
그리고 그 학생이 일하던 현장은 수호그룹 계열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 공장이었다.
하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이하나?”
태수가 갑자기 굳은 하나를 보고 당황하며 물었다.
“괜찮아?”
“……네.”
하나는 겨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 기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아는 사건이야?”
태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동생이에요.”
“뭐?”
태수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 기사 속 학생… 우리 해진이에요.”
-
2019년 가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하나는 취업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알바를 병행했고, 시간 되는 대로 자격증까지 준비했다.
그 무렵 동생 해진은 특성화고 3학년으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말이 현장실습이지 사실상 학생들을 노동현장에 투입시키는 것이었다.
조금 저렴한 값에…….
해진이 가게 된 곳은 수호그룹 자회사의 제조 공장이었다.
“누나, 나 취업했어!”
해진은 하나에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만 하면 졸업 후에 바로 채용해 주는 경우가 많대.”
하루, 이틀……. 처음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해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
해진이 하나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더니 들어오며 말했다.
“누나 뭐 해?”
“응? 왜, 해진아.”
하나는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게… 나 다른 일 알아볼까?”
그제야 하나가 고개를 돌리고 해진을 바라봤다.
해진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그래도 나 아직 학생인데… 너무 미래를 빨리 결정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말을 들은 하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가볍게 웃었다.
“어쭈, 이해진 씨 뒤늦게 사춘기라도 오셨어요?”
“…사춘기는 무슨.”
“근데, 누나는 이해해. 원래 그럴 때야. 졸업 앞두고 이 생각 저 생각 다 들지? 주변 친구들은 이거 한다, 저거 한다. 그런데 해진아, 그럴 때일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그냥’ 하는 거야. 잘 모르겠고, 걱정되고 그렇지? 그럴 땐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그렇게 나아가는 거야.”
그때 하나는 단지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쉽게.
동생이 그저 졸업을 앞두고 심란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 접해보는 사회생활에 혼란을 겪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취업 준비로 지쳐 있던 하나는, 동생의 말을… 사려 깊게 듣지 못했다.
“…알겠어. 누나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일찍 자. 그러다 주름 생긴다.”
해진은 애써 웃으며 농담 한마디를 남기고 방으로 돌아갔다.
“짜식.”
일주일 후.
해진이는 스스로 삶을 끝냈다.
장례식장.
하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누나와 자란 아이의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나…….”
“어… 해진이 친구구나.”
그런데 해진의 친구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
“해진이가… 누나한테 말을 안 했을 것 같아서요.”
“응? 뭘…….”
“해진이,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랬니…….”
“회사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했어요. 안전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어떤 직원들은 해진이한테 이상한 말도 했대요.”
“이상한 말……?”
“네, 성적인……. 그래서 선생님한테 말했다고 했는데 별로 바뀐 건 없었던 것 같아요…….”
해진이 친구의 말을 들으며, 하나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지, 우리 해진이가?”
“…누나한테 걱정 끼치기 싫다고 했어요. 누나 엄청 바쁘다고…….”
하나의 시야가 흐려졌다.
그제서야 하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누나는 이해해. 원래 그럴 때야. …… ‘그냥’ 하는 거야. 잘 모르겠고, 걱정되고 그렇지? 그럴 땐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그렇게…….”
자신이 해진에게 해주었던 말이 장례식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심하고 무책임한 말이.
해진이는 참았다. 끝까지.
그러다 무너진 것이다. 누나 없이 혼자서.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후.
하나가 멍한 상태로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처음 느껴보는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고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편의점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한다.
“윽!”
하나는 비전에서 깨어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뭐지……?”
이틀 후, 정말로 그 편의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전자레인지 폭발.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가 나왔고 건물이 반쯤 탔다.
뉴스를 보던 하나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내가… 미래를 본 거야?’
그게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6년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
2025년 현재 『주간시사』 편집국.
“그랬구나…….”
태수가 하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안해. 전혀 몰랐어.”
“괜찮아요. 안 그래도 말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어요.”
하나는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선배님, 수호그룹 산재 사고 기록 더 찾아주실 수 있어요? 최대한 많이요.”
“파고들 거야?”
“…….”
“동생 일에 대한 복수심 그런 건 아닐 테고……?”
하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아니에요. 단지… 찜찜한 게 있어서 그래요. 꼭 확인하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어요? 큰 문제는 안 만들게요.”
태수는 간절해하면서도 결연한 하나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번 해보자.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건지…….”
“정말 고마워요, 선배.”
그날 밤, 하나의 집.
하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수호그룹을 검색했다.
수십 개의 기사가 떴다.
‘수호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 12월 초 개최’
‘수호타워, 진영동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쭉 살펴보는데, 화려한 기사들 사이에 묻힌 산재 사고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아주 작은 인터넷 언론사에서 내보낸 기사였다.
하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하나 씨?”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하나는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이번엔 꼭 바꾸고 싶어요. 이 끔찍한 결말을.”
-
같은 시각, 진영동 성당.
전화를 끊은 우진이 창밖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호타워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러더니 무언갈 결심한 표정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악에서 구하소서…….”
1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