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전 10시.
진영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
하나와 우진은 초인종 앞에서 서로를 바라봤다.
“준비되셨어요?”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금… 떨리네요. 이런 게 처음이라.”
우진이 옷 매무새를 한 번 더 만지며 대답했다.
딩동!
문이 열렸다.
60대 여성이 피곤한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눈가에는 깊은 주름이, 손에는 일을 많이 한 흔적이 역력했다.
“차우진 신부님이시죠? 박형석 신부님이 연락 주셨어요. 들어오세요.”
거실은 작고 소박했다.
벽 한쪽에는 젊은 남자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청년.
“차라도 한잔…….”
“아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우진이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가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형석 신부님께 듣기로는, 건설 현장 사고 피해자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계신다요.”
“네. 저희가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요.”
“그쪽은……?”
중년의 여자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나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픽 하고 웃으며 명함을 받았다.
“아, 네……. 기자님……. 3년 전에도 여러 분들 왔었죠, 기자님들……. 기사 하나 제대로 난 건 없지만…….”
사실이었다.
하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드릴게요.”
우진이 나직하게 말했다.
“박…주환 군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가 한참 우진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환이는… 정말 성실한 아이였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일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시작했죠. 돈 벌어서 동생 대학 보내겠다고……. 그런 아이였어요.”
하나는 조용히 녹음기를 켰다.
“사고 당일, 아침에 전화가 왔었어요. 오늘 일 끝나면 맛있는 거 사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겠다고…….”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15층 외벽 작업이었더라고요. 안전벨트 하나만 차고 했다는데 그게 끊어져서…….”
“네?”
그 말을 듣고 우진이 자기도 모르게 놀랐다.
며칠 전 고해성사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였다.
“왜, 왜 그렇게 놀라세요, 신부님?”
놀란 우진을 보고 하나가 물었다.
하지만 아는 내용에 대하 말할 수 없는 수 없는 우진.
“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러자 주환의 어머니가 말을 계속 이었다.
“그게 그 아이 마지막이었죠. 주환이 친구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때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 뒤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아이고…….”
하나가 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하며 탄식을 했다.
“혹시 그 친구분 이름을 알고 계세요?”
“그럼요. ‘지선우’라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도 참 착하고 착실했는데…….”
‘지선우…….’
하나와 우진이 동시에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선우가 끝까지 싸웠어요. 수호건설 책임이라고. 원청이 안전 관리 책임이 있다고. 그런데…….”
주환의 어머니가 잠시 말을 멈췄다.
“선우네 사장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네?!”
하나와 우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호건설 측에서 하청이었던 그 업체를 압박했다고 들었어요. 거래 끊고, 다른 현장에 발도 못 붙이게 했다고……. 그 후로 회사가 급격히 기울었고, 결국 사장님까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후로 선우 소식은 못 들었어요. 당시에 몇 번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 않더라고요……. 그 아이도 참 많이 아팠을 텐데…….”
-
1시간 후, 아파트 단지를 나선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었다.
“하,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네요.”
하나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네…….”
“이런 사연이 수십 개라면… 정말 누군가는 무서운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나는 자신의 생각에 점차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네…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우진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제 고해성사에서 들은 이야기와 내용이 똑같은 이야기였다.
‘잠깐!’
그때 우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이 있었다.
절뚝거리며 청소 카트를 밀고 가던 한 남자.
자신의 옆을 지나치던 그 청년.
‘어제 고해성사를 보았던 그분이 분명 그랬었지. 수호타워에서 그 청년을 봤다고… 그렇다면……!’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30대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들어왔다.
유모차에서는 귀여운 아기가 멀뚱멀뚱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성이 카운터로 가 음료를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 하나 주세요.”
그런데 한 카페 직원이 커피를 만들다가 실수로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탕!
큰 소리가 났고, 아기가 깜짝 놀라 울기 시작했다.
“으앙! 으앙!”
그러자 엄마가 당황해서 아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카페 안의 손님들이 슬슬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으윽!”
하나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또 비전이었다.
- 또 찾아온 비전 -
카페 테이블 위 뜨거운 커피.
유모차가 테이블에 부딪히며 커피가 쏟아진다.
아기의 비명.
구급차 사이렌 소리.
-
“하나 씨!”
우진이 다급히 하나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네, 잠시만요!”
하나는 재빨리 일어나 유모차 쪽으로 다가갔다.
아기 엄마는 여전히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저기…….”
하나가 아기 엄마에게 급하게 말했다.
“유모차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테이블에 부딪힐 것 같아서요.”
“네?”
엄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우진이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움직였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우진이 아기 엄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아기가 놀랐나 봐요.”
“네… 아이고, 많이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바로 그 순간, 아기 엄마가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안는 과정에서 유모차를 툭 쳤다.
유모차가 앞으로 굴러가더니 테이블에 부딪혔다.
크게 부딪히진 않았지만 안 그래도 흔들거리던 테이블이었던지라, 위에 놓여 있던 커피잔이 쓰러졌다.
쿵! - 촤악!
뜨거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하지만 다행히 유모차나 아기에게는 닿지 않았다.
“헉!”
엄마가 놀라 유모차를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기는 충격에 놀라 더 크게 울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곧 이어 카페 직원이 달려와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나온 하나와 우진.
“에휴…….”
하나가 지친 듯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근데 하나 씨, 이번엔 뭘 본 거예요?”
그런 하나에게 우진이 물었다.
“큰 사고는 아니었고, 유모차가 테이블에 부딪혀서 커피는 쏟아지는 장면이 보였어요. 결국 똑같이 벌어졌네요.”
“그랬군요…….”
“어?”
그런데 하나가 무언가에 당황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이상해요. 분명… 분명 구급차 소리가 들렸는데…….”
“구급차요? 오면서 구급차는 못 봤는데…….”
하나는 다급히 우진에게 말했나.
“신부님!”
“하나 씨 설마…….”
“비전과 달라요……! 이번에는… 조금이지만 봤던 것과 달라요!”
1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