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조우

by 온새결

회사로 돌아오는 길.

하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구급차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6년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비전이 오늘 처음으로 달라졌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회사에 도착한 하나는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태수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이하나,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에요…….”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전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수호건설 현장 사고 사망자 가족 만나고 왔다며?”

“네.”

“어땠어?”


하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참… 답답한 일이에요. 3년 전 당시에도 기자들이 찾아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기사화가 안 됐는지…….”

“수호건설…이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지. 손을 썼을 테니…….”

“사고 원인은 생각보다 명확했어요. 안전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그날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려고요. 그분이 수호건설 측과 소송을 하려고 했었나 봐요.”

“수호건설과 소송을? 이름이 뭔데?”

“‘지선우’라고 하더라고요.”

“지선우…….”

“연락이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찾을지가 좀 막막하긴 하지만요.”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커지겠군…….”

“네…….”

“좋아. 나도 한번 알아볼게.”

“고마워요, 선배.”

“하나야.”

“네.”

“조심해. 이 일, 수호그룹 뒤 캐는 일이야.”

“…네. 그럴게요.”


태수가 자리로 돌아가자 하나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런데 자꾸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까 그 비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바뀐 거지? 우진 신부님이 있어서? 아니면…….’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우진이었다.


“네, 신부님.”

“하나 씨, 지금 통화 괜찮아요?”


우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진지했다.


“네, 괜찮아요.”

“비전이랑 달랐다는 거… 정말 처음이었어요?”

“네. 6년 만에 처음이에요.”


전화 너머로 우진이 크게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저도 그래요.”

“그나저나 하나 씨, 제가 뭐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요?”

“내일 수호타워에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그럼요. 그런데 갑자기 수호타워는 왜요?”

“어쩌면… 지선우 씨 수호타워에 있을지도 몰라요.”

“네?!”


우진의 말을 듣고 하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건…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몇 시에 만날까요?”

“오전 10시 정도가 좋을 것 같아요. 상담 프로그램 진행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되니까.”

“좋아요. 그럼 내일 봬요.”


-


그날 밤, 하나의 집.

하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옆 탁자에는 6년간의 기록이 담긴 수첩들이 쌓여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이번엔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수호타워 붕괴.

수백 명의 사상자.

그 끔찍한 미래를.

하나는 핸드폰을 들어 달력을 확인했다.

12월 초에 있을 수호그룹 50주년 행사까지 40여 일.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 얼른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야 한다.


-


같은 시각, 진영동 성당.

우진은 고해소 앞에 앉아 있었다.

며칠 전 고해성사를 했던 그 남자.

그가 말한 ‘절뚝거리는 청년’과 오늘 들은 이름 지선우.


‘정말 같은 사람일까?’


우진은 성당을 나와 마당을 걸었다.

기적이가 우진에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볐다.


“기적아.”


우진은 고양이를 안아 올렸다.

기적이가 갸르릉거리며 우진의 품에서 몸을 웅크렸다.


“이번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


다음 날 오전 9시 50분.

수호타워 1층 로비.

하나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타워가 더 웅장해 보였다.


“하나 씨! 일찍 오셨네요.”


우진이 다가가며 인사를 했다.


“네, 신부님, 얼른요. 말씀해 주세요. 지선우 씨가 수호타워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이에요?”

우진이 목소리를 낮추며 얘기했다.


“며칠 전에 말이에요. 절뚝거리면서 청소 카트를 끌고 다니시는 분을 본 것 같거든요.”


우진의 말에 하나는 잠시 기억을 곱씹었다.


“어? 왠지 저도 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이 왜 지선우 씨라는 생각을…….”

“그건… 사제의 신분으로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해요, 꼭.”


‘사제의 신분으로는 … …’


하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우선 1층 커뮤니티 공간으로 향했다.

우진이 상담 준비를 하는 동안, 하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청소부들이 여기저기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뚝거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신부님, 오늘은 몇 명이나 오실 것 같아요?”

“글쎄요. 어제 예약하신 분이 두 명 있는데…….”


그때였다.

복도 끝에서 청소 카트를 끌고 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하나와 우진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향했다.

남자는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 다리를 확실히 절고 있었다.


“저 사람…….”

“맞아요. 저 사람이에요.”


하나가 작게 중얼거리자 우진이 답했다.


“그런데 저 사람에게 어떻게 물어보죠? 그냥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다리는 어쩌다 그런 거냐고?”

“일단은… 그냥 가서 인사만 건네죠.”


우진은 차를 한잔 따르더니 조심스럽게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 남자는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그러곤 남자는 우진의 어깨 너머로 상담소 옆에 작게 걸린 현수막을 흘끗 보았다.

「잠시 멈추고 이야기 나누실래요? 힘든 이야기 들어드립니다. 쉼표 상담소.」


그리고 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진은 그의 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깊은 어둠.


“무슨 일로…….”

“수호타워에서 일하시는 분이시죠? 저는 저쪽에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차우진 신부라고 합니다.”

“네… 그런데요?”

“차를 한잔…….”

“됐습니다.”


남자가 그렇게 차갑게 말하고 지나갔다.

하나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우진에게 말했다.


“어쩐지 저분과 대화하는 게 쉽지 않겠는데요?”

“…….”

“신부님?”


하나가 말이 없는 우진을 불렀다.


“왜 그러세요?”

“저분이 아니에요.”

“네?”

“명찰에… 다른 이름이 쓰여 있네요. 김민수…….”

“아…….”


하나와 우진은 조금 허탈한 얼굴로 작은 카트를 끌고 절뚝거리며 멀어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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