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닮은 상처

by 온새결

“하나 씨 미안해요. 저는 정말 지선우 씨일 거라고 확신했는데…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에이, 미안은요. 상담 시작 시간 조금 남으셨죠?”

“예.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남아 있네요.”

“그럼, 타워 한번 둘러보면서 조사해 볼까요? 지난번에 봤던 그 금 상태도 확인하고.”

“그래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복도를 걸으며 벽면을 살폈다.

지난번 조금 길어졌던 그 금.

이번엔 그 상태 그대로였다.


“음… 잘 모르겠네요. 지난번보다 길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우진이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심각한 균열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요. 신부님, 지하도 한번 가볼까요?”

“지하라면, 주차장?”

“네. 건물 밑도 궁금해서요.”

“좋아요. 한번 가보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침인데도 차들이 꽤나 들어차 있었다.


“어쩐지 으스스하네요. 아침인데도.”


하나와 우진은 별다른 게 없나 살펴보며 천천히 주차장을 걸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

B2-15, B2-16, B2-17…….


“어?”


그러다 하나가 어느 한 기둥 앞에서 멈춰 섰다.


“이게 뭐지?”


우진도 다가와 기둥을 살폈다.

기둥 하단부, 바닥과 만나는 부분의 콘크리트 색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변색이 된 것처럼.


“물에 젖은 건가?”


우진이 만져보려 하자 하나가 막았다.


“잠깐,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하나는 카메라를 꺼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플래시를 켜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봤다.


“이런 것도 관계가 있을까요?”

“글쎄요. 다른 기둥도 확인해봐요.”


그들은 주변 기둥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다른 몇 개의 기둥에도 비슷한 흔적이 있었다.


“중간중간 있는 걸 보면 흔한 현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우진은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음… 그래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니, 체크는 해둘게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하나가 핸드폰 메모장에 변색이 된 기둥 번호를 적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제 슬슬 상담소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네요.”

“네. 저도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해요. 이따 오후 5시였죠?”


하나와 우진은 오늘 저녁 또 다른 사고 피해자 가족을 만나기로 한 터였다.


“네 맞아요. 저는 상담 끝나고 바로 갈게요.”

“좋아요. 그때 봬요!”


-


그날 오후 5시.

수호타워에서 조금 떨어진 한 카페.

하나와 우진은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50대 남성.

2년 전 한 공장에서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그 공장 역시 수호그룹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공장이었다.


“안전 교육도 제대로 없었어요.”


의외로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 담담함 속에서 깊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신입한테 위험한 일만 시켰더라고요. 보호 장비라도 좀 제대로 된 걸로 주든가…….”


하나는 녹음기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물었다.


“보상은 받으셨나요?”

“보상이요?”


그러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산재 처리도 제대로 안 해줬어요. 아들 잘못이라는 거죠. 주의를 안 했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그 사람들한테 우리 같은 건 그냥… 소모품이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혹시 소송 같은 건 진행 안 하셨어요?”


하나가 물었다.


“당연히 하고 있죠.”


그 말을 하면서 그의 눈빛이 달러졌다.

결연하게.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혼자서. 절대 포기 안 합니다.”

“혼자서요?”

“네. 처음엔 같이 싸워주던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다 포기했어요. 저만 남았죠.”


그는 가방에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게 그간 모은 자료 전부예요. 우리 아들 죽인 기계 관련한 정보부터 업무 일지, 주변 사람들 증언까지 다 있어요.”


하나의 눈이 커졌다.


“이걸… 저희한테 주시는 건가요?”

“기자님이라고 하셨잖아요. 지금까지 이렇게 아들 일로 인터뷰 요청하신 분 처음이세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우리 아들… 이름 석 자라도 꼭 세상에 알려주세요.”


카페에서 나온 두 사람은 한참 말이 없었다.


“하…….”


하나가 먼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만나야 할 분들 많은데, 걱정이에요. 하나같이 너무 힘든 사연들이라.”

“처음엔 ‘설마’ 했는데, 하나 씨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수호그룹을 원망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겠어요.”

“네…….”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여기서 시간을 조금만 되돌려, 하나와 우진이 지하를 돌며 이 기둥 저 기둥을 살펴보던 그 시각.

둘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뭘…하는 거지?’


아까 우진이 차를 건넸던 그 남자였다.


‘저 사람들…….’


뜬금없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던 이들이 자신의 작업 현장에서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곧이어, 하나가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기둥들이 그가 작업해 놓은 기둥들이라는 것을 눈치챈 그는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는 얼른 낡은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메모를 적기 시작했다.


“비상사태 발생. 누군가 흔적 발견.”


뜬금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남자.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촬영하고 있는 여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덮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초조함과 결연함이 섞여 있는 눈빛으로.



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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