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 하나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며칠 전 사고 사망자 아버지에게서 받은 자료들.
하나는 이미 몇 시간째 그 서류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사망 청년의 이름은 강준호.
수호테크 제조 공장에 생산직으로 입사한 지 고작 6개월 차였다.
사고는 야간 작업 중에 발생했다.
혼자서 작업을 하던 중에 기계에 그만…….
하나는 서류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업무 일지, 안전 점검표, 기계 정비 내역…….”
하나는 형광펜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하며 메모했다.
그러다 문득 손이 멈췄다.
“어?”
일일 안전 점검표.
사고 날짜의 모든 점검 항목이 ‘이상 없음’으로 체크되어 있었다.
“이상 없음이라고?”
하나는 다시 앞 페이지로 넘겼다.
사고 전날, 전전날의 기록도 모두 ‘이상 없음’이었다.
“기계에는 문제가 없었고 갑자기 사람이 끼었다…….”
그런데 어쩐지 느낌이 싸했다.
하나는 서류를 더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짧은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3개월 전에도 같은 기계에서 끼임 사고가 있었다고 함.
하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확인할 수 없음.
- 동료 익명 증언”
하나의 눈이 커졌다.
“3개월 전에도?”
그녀는 얼른 안전 점검표를 뒤적였다.
3개월 전 그 날짜.
역시 ‘이상 없음’이었다.
“이게 말이 돼?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같은 사고가 있었는데 기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밤 11시.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졸린 듯했다.
“신부님, 자고 계셨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증언록 검토하고 계시죠? 혹시… 3개월 전에도 같은 기계에서 끼임 사고가 있었다는 것 같은데, 관련 증언 있나 해서요.”
“아, 맞아요. 3개월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했는데… 잠시만요.”
전화 너머로 우진이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깄네요. 3개월 전쯤 같은 라인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 있었다고 해요. 동료 증언인데, 회사에서… 조용히 넘어갔다네요…….”
“손가락 절단……. 그랬군요.”
“왜요? 뭐 발견한 거 있어요?”
“네……. 조금 찜찜한 게 있어요.”
하나가 의심스러운 내용을 우진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전화 너머로 우진이 크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공장에서 기록을 조작했다고 의심하는 거예요?”
“어쩌면요. 강준호 씨 아버님께서 주신 자료를 보면 이 기계는 센서가 있어요. 사람 손이 접근하면 기계 작동이 자동으로 멈추는데, 3개월 사이에 두 명이나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니……. 애초에 부주의로 끼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 같은데, 사고의 원인은 오직 부주의란 말이죠. 영 이상하지 않아요?”
“예……. 확실히 그러네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그 공장에 가볼까 해요.”
“내일 아침이요? 갑자기 왜요?”
“아무래도 그 손 다치셨다는 분 관련해서 정보를 좀 구해봐야겠어요.”
“하나 씨 혹시… 그분을 의심하시는 거예요? 그분이 수호타워 테러를…….”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취재 요청도 없이……. 게다가 내일은 일요일이에요.”
“수호테크 취재하려는 게 아니라 은밀히 회사 직원들만 만나보려고요. 그리고 일요일이니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몰라요. 공장은 24시간 돌아가니 생산직 직원들은 계속 있을 테고, 관리직들은 많이 출근 안 했을 거예요.”
“하나 씨, 아시겠지만 내일은 주일이라 제가 동행할 수가 없어요.”
“알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래 봬도 기자라고요. 이런 일 익숙해요.”
하나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이상한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럴게요.”
-
다음 날 오전 10시.
경기도 외곽의 한 공장 단지.
하나는 차에서 내려 공장 정문을 바라봤다.
「(주)수호테크」
낡은 간판.
하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정문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누구세요?”
갑자기 공장으로 들어가려는 하나를 보고 50대 남성 경비원이 뛰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하나가 명함을 건넸다.
경비원은 명함을 받아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주간시사』? 저희 공장엔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공단 사람들」을 주제로 기사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제조업을 지탱하고 계신 분들 일상을 들여다보는 특집 기사인데, 여기서 일하시는 몇 분과 짧게 인터뷰를 좀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음… 공장장님이랑 얘기가 된 거예요?”
“어… 그건 아직…….”
경비원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못 들어갑니다. 돌아가세요.”
“네? 아아, 선생님 정말 잠깐이면 돼요.”
“안 됩니다.”
경비원은 단호했다.
“그럼 지금 관리자분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꼭 좀 부탁드려요.”
“하, 지금 공장장님 계시긴 한데…….”
‘공장장이 있어……?’
하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너무 잘됐네요! 공장장님 지금 어디 계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수호테크 홍보가 많이 될 거니까.”
“쓰읍…….”
그때였다.
“거, 무슨 일입니까?”
그때 공장 안쪽에서 수호테크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50대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다.
그러자 경비원이 허리를 잔뜩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아! 공장장님!”
공장장이었다.
“기자라고 하는데, 약속도 없이 와서는 인터뷰를 하겠다고 자꾸만…….”
“인터뷰? 무슨 인터뷰?”
그때 하나가 끼어들어 공장장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공장장님!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라고 합니다!”
“나 공장장 황만수요. 그런데… 『주간시사』?”
하나가 회사 이름을 말하자 공장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네! 최근에 「공단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국내 굴지의 기업 수호테크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꼭 좀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요! 수호테크 홍보도 많이 될 거예요. 기사 정말 잘 써드릴게요. 꼭 좀 부탁드려요!”
하나의 명함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황만수가 하나의 말을 듣더니 픽 웃으며 말했다.
“『주간시사』가 언제부터 그런 기사나 쓰던 곳이었소?”
하나는 당황했지만,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밝은 얼굴로 대응했다.
“아이고, 공장장님 저희가 좋은 기사 얼마나 많이 쓰는데요!”
“그럼 정식으로 취재 요청 공문 보내고 오시오.”
“네?”
황만수가 경비원에게 말했다.
“돌려보내요.”
“예!”
결국 하나는 정문 밖으로 쫓겨났다.
뒤에서 쾅 하고 문이 닫혔다.
“하…….”
하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1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