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잠복

by 온새결

다음 날 정오 무렵 『주간시사』 편집국.

하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카메라를 챙기고 있었다.

망원렌즈, 배터리, 메모리 카드.


“하나야.”


뒤에서 태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네, 선배.”

“어디 가?”


태수가 가방을 싸는 하나를 보며 물었다.


“취재 나갑니다.”

“무슨 취재?”


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수호그룹 현장취재요.”


태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


하나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그래…….”


하나가 편집국을 나서고, 태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


낮 12시 30분. 수호타워 지하 2층 주차장.

하나는 B2-17 기둥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대놓고, 시동을 끈 채 그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려 볼까나.’


하나는 올 때 사 온 빵을 한 입 베어 물면서 시선을 B2-17 기둥에 고정시켰다.

시간이 흘렀다.


오후 1시.

주차장으로 간간이 차들이 드나들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

아직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도 그저 기둥 주변을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아무도 없네…….’


오후 2시.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 반…….’


허리가 뻐근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릴 수는 없었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테러범이 작업을 하러 오지 않을 테니까.

하나는 차에서 작게 스트레칭을 하고선 다시 기둥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오후 3시.


‘에휴…….’


하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니겠지……? 아직 몇 시간 되지도 않았으니 초조해하지 말고 밤까지 기다려보자.’

그때였다.


똑똑.


갑자기 차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차 밖엔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이 서 있었다.


“……!”


하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


“무슨 일이세요?”


앞에 선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하나를 내려다봤다.


“수호그룹 보안팀장입니다. 신원 좀 확인 좀 하겠습니다.”

“네? 저 그냥 차에 있었는데요…….”

“여기 주차하신 지 얼마나 됐죠?”


하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두세 시간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용건이 뭡니까?”

“아니… 제 개인적인 용건을 왜……?”


그러자 보안팀장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


“신원 불명의 사람들이 지하주차장을 배회하며 사진을 찍고 다닌다는 제보가 최근에 들어왔습니다.”

“네?”


하나의 눈이 커졌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시죠? 그 카메라는 뭐고요?”

“아, 그게… 저는 『주간시사』 기자입니다. 그냥 잠시 쉬면서 취재 준비하고 있었어요.”


하나는 재빨리 명함을 꺼내 보안팀장에게 건넸다.

그러자 그가 명함을 받아 보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취재를 준비한다고요? 혹시 지난번에 이곳저곳 촬영하면서 돌아다니신 분 아니세요?”

“아… 그, 그게…….”


보안팀장의 말에 하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역시 맞군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자, 허가를 받지 않은 일체 촬영 및 취재 금하고 있습니다. 차 빼시죠.”

“제, 제가 뭘 잘못했다고…….”

“나가세요. 지금 당장.”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수호타워에서 나가야 했다.

뒤로 보안팀 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졸졸 따라왔다.


‘망했다…….’


타워 출구를 빠져나오자 뒤따라오던 보안팀 차량이 멈췄다.

그리고 보안팀장이 하나의 차 옆으로 걸어와 창문을 두드렸다.

하나가 창문을 내렸다.


“다음부턴 정식 절차를 밟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보안팀장은 차로 다시 돌아갔고, 차량은 유턴해서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는 백미러로 멀어지는 그 차를 쳐다봤다.


‘하…….’


허탈함이 밀려왔다.


-


그 시각.

수호타워를 빠져나가고 있는 하나의 차를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작업복에 ‘김민수’라고 써진 명찰을 달고 있는 한 남자.


-


그날 저녁 7시 30분.

청담동의 한 고급 한정식집.

황만수가 룸 안에서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그 옆엔 김 부장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똑똑.


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50대 남자가 들어왔다.

수호테크 본사 최상훈 전무였다.


“전무님! 오셨습니까!”


황만수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김 부장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앉아.”


최 전무가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러자 황만수와 김 부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앉았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만수가 최 전무에게 공손히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래, 황 이사 잘 지냈나?”

“그럼요 전무님 덕에… 하하.”

“공장은? 별일 없고?”

“하하, 그게… 그렇죠 뭐, 하하.”


시원찮은 대답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최 전무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하긴 별일 없으면 자네가 나한테 연락했겠나. 뭔데 이 사람아.”

“그게… 얼마 전에 기자 한 명이 공장에 나타났습니다.”


황만수의 태도가 다소 조심스러워졌다.


“기자?”

“네. 『주간시사』 이하나라는 기자입니다.”


김 부장이 말을 거들며 이하나의 명함을 최 전무에게 건넸다.

최 전무는 받은 명함을 쳐다보며 물었다.


“음… 그래서?”

“2년 전에 공장에서 있었던 사고를… 조사하는 것 같더라고요.”


황만수가 말했다.


“2년 전이라면…….”

“그 무렵에 사고가 몇 건 있었는데, 아무래도 죽은 ‘그 친구’ 사건이 조금 걸립니다.”

“아, 그래. 한 친구가 죽었었지. 아마… 그 친구 아버지가 지금 회사랑 소송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그 사건입니다.”


최 전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래. 공장 측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예. 일단 직원들 입단속 철저히 시켜놨고, 경비도 철저히 서면서 모르는 사람 접근 절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는 해놨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장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좀 있다 보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최 전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요즘 같은 땐 확실히 하고 가야지. 또 조만간 그룹 50주년이라고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는데, 잡음이 나와서야 되겠나.”

“예. 그래서 전무님께 말씀을 드린 겁니다.”

“잘했네.”


최 전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간시사』 좀 까다로운 애들이야. 내가 힘써보지.”

“감사합니다, 전무님.”

“자네는 공장 단속만 철저히 하라고.”

“네, 전무님!”

“자, 이제 어서 들지.”


그렇게 그들의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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