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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

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27

by 시나브로

글을 통해 짜릿한 수상의 기쁨을 누렸고, 나름 원하는 일자리에도 도전해 성공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업무에 몰입하다 보니 매일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은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부족한 점을 채우고자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기도 했고, 처음 계획했던 방향을 따라가다 갑작스러운 지시로 모든 흐름이 뒤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 근처 원룸으로 이사도 감행했다. 점심시간에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짧은 휴식을 취하는 루틴도 생겼다. 겉보기엔 많은 일을 한 것 같지 않아도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는 정작 나 자신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일상 속 활력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도, 새로운 경험으로 사고를 확장해보겠다는 다짐도 점점 희미해졌다. 그저 하루를 채우기보다는 버티며 살아낸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웃음도, 생기도, 나 자신도 점점 사라져 갔다.

'처음엔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이 환경에서 왜 나만 답답해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어 마음을 들여다봐도 돌아오는 건 공허함뿐이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머물고 싶어 했다.


당시엔 코로나19로 인해 항시 마스크를 써야 했고, 방역 대책에 따라 계획했던 많은 것들이 무산되거나 연기되었다. 어쩌면 외부 상황 탓으로만 돌릴 수도 있었지만 그건 진심으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한 방어일 뿐이었다. 슬럼프와 관련된 책들도 읽어봤지만, 오히려 상황을 합리화하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그럼에도 글을 완전히 놓지는 않으려 애썼다. 기관 내부에 기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원고를 써서 제출했고, 공모전에 다시 도전했으며, 과거 두려워 외면했던 일에도 조금씩 직면해보려 했다.


그렇게 작은 도전을 시작하자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 문화를 다룬 원고에 내 글이 실렸고, 새롭게 시작한 활동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소속 기관의 도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글을 놓지 않았던 시간들이 결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멘탈이 강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루틴’을 지키는 힘이었다.


슬프고 지치더라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내는 사람.

나는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회피하며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도 루틴의 가치와 내면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글로 정리하더라도 사람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힘들고 쓸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글을 멀리하기보다는
하나씩 써보며 생각을 확장해가는 게
결국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들어주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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