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28
코로나를 비롯해,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경험을 한다. 팬데믹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무산되던 시기, 나는 흐려져가는 자존감과 삶의 방향을 다시 붙잡고 싶었다. 그때 문득, 어릴 적 봉사활동을 하며 나를 둘러싼 껍질이 아닌, ‘진짜 나’를 들여다봤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전에는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그 무렵 우연히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장애 청소년 대상의 학습 멘토링 봉사활동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뇌성마비’라는 단어는 낯설진 않았지만, 뇌병변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말이 어눌할 수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 중에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간혹 지하철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멘토링을 하게 되더라도 단순히 교과 과목보다는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혹시 글쓰기와 같은 활동으로 멘토링이 가능할까요?” 며칠 뒤, 담당자로부터 반가운 답장이 도착했다.
“그럼요, 가능합니다!” 그렇게 뇌성마비 청소년과의 멘토링 인연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활동이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고, 발대식조차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처음부터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처음엔 화면 너머로 대화하는 게 어색했다. 멘티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불편해 타자 속도도 느렸다. 짧은 이야기만 오갔지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멘티는 처음엔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는 것을 망설였다. 마치 ‘생각’에도 정답이 있어야 할 것처럼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는 건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는 거예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은 글로 풀어보는 연습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격려를 이어가자 조심스러웠던 멘티도 점차 글쓰기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복잡한 주제보다, 청소년 권장 도서나 읽기 쉬운 책을 함께 읽고 각자 독후감을 쓴 뒤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에는 3줄을 쓰는 데 2시간이 걸렸던 멘티가 6개월쯤 지나자 10줄 이상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낼 수 있게 되었다. 타자 속도도 점차 빨라지면서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1년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글을 매개로 꾸준히 소통했다.
어느 날, 나는 멘티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우리,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 책 한 권 만들어볼래요?”
잠시 망설이던 멘티는 곧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처음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책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