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29
가볍게 소통하는 글과 달리, 책으로 글을 엮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이었다. 특히 ‘장애’와 ‘청소년’이라는 키워드를 담은 글이기에, 조금이라도 안 좋게 비칠 소지가 없는지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글을 쓴 멘티 본인의 목소리였다. 너무 잘 쓰려는 시도보다는, 당사자의 표현이 온전히 담기도록 다듬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멘티 역시 최선을 다해 원고를 정리했고, 나는 책이 세상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주변의 재능기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책 표지와 디자인, 편집까지 여러 손길이 보태졌다. 또한,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추천사를 모아 함께 실었다. 그렇게 2022년, 멘티의 생일에 맞춰 ISBN을 부여받은 한 권의 책이 출판되었다.
책 제목 역시 멘티가 직접 지었다. 출판 후 일정 기간 동안만 책을 판매했고, 판매 수익금 전액은 멘티의 이름으로 복지관에 기부했다. 주변의 응원 덕분에 책은 조금씩 판매되었고, 일부는 도서관에 비치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데이지(DAISY,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버전의 책도 제작하기로 했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오디오 형식으로 책을 들을 수 있도록 편집한 디지털 자료로,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언제든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 과정 역시 멘티와 함께 천천히, 정성껏 진행했다. 책을 만들고, 판매하고, 기부까지 완료한 이후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청소년과 함께한 책 만들기 경험을 ‘휴먼라이브러리 개관 10주년 행사’의 토크콘서트 메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하지만 도서관장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도와주었고, 우리는 책을 만드는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사람들 앞에서 멘티와 함께 약 한 시간 동안 발표할 수 있었다.
만약 멘티와 함께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무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록 소규모 독립출판이었지만, 책을 통해 받은 피드백, 글에 자신감을 갖게 된 멘티의 변화, 그리고 지금도 종종 자신의 글을 공유하는 멘티의 모습에서 ‘글’이라는 매체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강력한 소통 수단임을 다시금 느꼈다.
멘토와 멘티가 함께 글을 쓰며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막막했던 여러 순간마다 곁에서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여정이 가능했다. 2년 넘게 이어졌던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그저 하루를 마무리하며 주고받은 한 줄의 감상이었다. 그 짧은 문장이 쌓이고 이어지며 지금의 이야기로 확장될 줄은 몰랐지만, 그 모든 흐름이 우리를 이끌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쓴 글을 다시 보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미숙함마저도 분명 그때의 ‘나’였다.
그리고 그런 미숙함이 차츰 보완되어
조금 더 나은 문장으로,
조금 더 따뜻한 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