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26
메모하고 글을 쓰는 습관을 통해, 글로 나를 표현하는 일에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맞닥뜨린 현실은 그런 자신감을 조금씩 흔들었다. 바로, ‘자기소개서’라는 관문이었다.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나를 소개하는 글'이다. 하지만 취업 시장에 놓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순한 소개를 넘어서, 글로써 나를 어필하고, 납득시키고, 선택받게 해야 하는 글이 된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는 호기롭게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처음엔 분량을 넘기는 바람에 당황했지만, 억지로 늘리는 것보다 많은 내용을 간결하게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고, 곧바로 면접 연락이 올 거라는 상상을 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귀하의 능력은 뛰어나지만…”으로 시작되는 불합격 문자뿐이었다.
처음엔, 나를 뽑지 않은 회사가 이상하다는 어설픈 위로로 스스로를 달랬다. 정말 잘 썼다고 느꼈던 자기소개서도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하거나,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도 끝은 좋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외부 탓을 하며 자책에 빠지곤 했다. “나 정도면 왜 안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 쌓이면서 자신감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나를 써주세요’라고 정성을 다해 쓴 글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면서, 자기소개서를 쓰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이해하게 되었다. 공모전처럼 자기소개서도 결국은 평가의 대상이고, 그 안에서 ‘나’를 어떻게 포장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 한정된 경험 안에서 어떻게 하면 그 경험을 특별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소개서를 두고 ‘자소설’이라 자조 섞인 표현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통해 작성자의 성향이나 역량을 어느 정도 엿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채용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되는 현실 앞에서는 무게감이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에 대한 거부감도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열심히 썼음에도 ‘결과’가 없을 때, 자신의 글쓰기가 무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해서 자기소개서를 쓰며 느낀 것은 평범한 경험이라도 거기서 나만의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 글도 충분히 힘 있는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은 많지 않다. 억지로 특별해 보이려는 시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읽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은 그 억지스러움을 의외로 빠르게 감지한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든,
공모전을 위한 기획서든,
이런 글쓰기는 학창 시절 언어영역 시험처럼 느껴진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심사자의 니즈를 고민하며
그에 맞춰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야 하는 일.
탈락이나 실패를 거듭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이 글들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해 살아온 인생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글들을 쓰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삶의 흔적을 정리해보는 그 과정 자체는 내 안의 메타인지를 키워주었다.
‘나를 써주세요’라고 쓴 글은
언젠가 꼭 필요로 하는 곳과
퍼즐처럼 맞아떨어질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