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25
학사장교는 3월 중순에 입영해 6월에 임관하며(훈련 기간은 군 복무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해 9월 말경 실무에 배치된다. 약 6개월간 교육과 훈련, 시험을 치르며 시간을 보냈고, 그만큼 메모하고 기록한 내용도 점점 많아졌다. 훈련과 실무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훈련은 교육생이라는 신분으로 배우고 끝나는 과정이지만, 실무는 실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자리다. 실무 중에 발생한 실수는 ‘처음이라서’라는 이유로 넘어갈 수 없었다. 조직이나 기관에는 각자의 책임이 있고, 어떤 위치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감당해야 할 무게도 달라진다. 그 실수가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서원의 실수라면 결국 나의 책임이 되었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를 좋아했던 것일 뿐, 실제 배를 타고 파도를 직접 느끼는 해상 생활은 완전히 달랐다. 하루 종일 흔들리는 함정에 있자니 멀미는 기본이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출동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당직 근무(24시간)를 자주 섰다는 점이다. 당시엔 지금보다도 당직 개소가 많았기 때문에 3~4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섰던 기억이 난다. 당직 근무 중에는 원칙상 잠을 자면 안 되었기에, 졸음을 쫓기 위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방법을 활용했다. 특히 업무 중 스스로 부족했던 점이나 실수한 부분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글을 많이 썼다. 또한, 부서원들과 어떻게 하면 원활하게 소통하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책도 자주 읽었다. (군대에는 '진중문고'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지휘관은 책과 공부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식사 자리나 일과 이후 시간에도 공부를 시키고 시험을 보기도 해 힘든 점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덕분에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했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상담을 공부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지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글을 쓰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런 습관들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타인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선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실히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일정 부분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면,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고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가끔 해안 전방에서의 고요함 속에 홀로 사색하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는 수면 시간도 부족하고(하루 3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날도 있었고), 해야 할 일과 걱정이 겹쳐 힘든 때도 많았지만,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소소한 추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면 끝이 없는 것 같다.
P.S. 해군, 함정 근무 이야기를 꺼내면 자꾸 말이나 글이 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