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볼 것인가?

H 프로젝트 - 03

by 시나브로

작년 연말, H와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작스럽게 글감을 제시했다.

"무엇을 볼 것인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기에는

속을 알 수 없고, 그렇다고 겉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기에

고루고루 접목해서 보면 좋으련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네요."

글로 다 적을 순 없지만, 여러 일을 겪으면서 H의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 글이 세상에 나왔다.


무엇을 볼 것인가

사람은 흔히 말한다. "겉으로 보지 말고 속을 봐라." 하지만 그 말처럼 쉬웠다면, 세상에 오해도 편견도 없었을 것이다. 겉은 첫인상을 만들고, 속은 관계를 지속시킨다. 문제는 그 둘이 늘 따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겉모습은 표지 없는 책과도 같다. 표지가 없는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알지 못한다. 대신 우리는 책의 크기나 두께, 묵직함 같은 외형적 단서를 통해 그 책이 어떤 책일지 추측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옷차림, 말투, 표정 같은 '표지'를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의 속을 짐작하려 한다. 그 짐작이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많다.

그렇다고 겉모습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람의 겉모습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하나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 사람의 취향, 오늘의 기분, 살아온 시간의 일부가 그 겉모습에 묻어 있다. 겉모습을 전혀 보지 않고 속만 보겠다는 건, 표지 없이 책을 읽겠다는 것과 같다.

결국 중요한 건 둘 다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일 것이다. 겉모습에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속을 보기 위해 시간을 들일 줄 아는 것. 하지만 그게 쉬울까? 사람의 눈은 익숙한 것만 보려 하고, 귀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겉만 보고 판단하거나, 반대로 겉을 무시한 채 속만 보려다 실망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세상도 비슷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고, 보인다고 해서 전부를 아는 것도 아니다. 손끝으로 만져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귀를 기울여야만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사람의 겉과 속도 마찬가지다. 그 둘을 동시에 보는 건 어렵다. 겉을 보면서도 속을 보고, 속을 보면서도 겉을 이해하는 건 꽤나 고된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과정이 느리고 불확실할 뿐이다. 마치 손끝으로 낯선 물건을 더듬으며 그 형태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처럼. 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천천히 살펴본다면, 겉과 속이 따로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끔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겉을 볼까? 속을 볼까? 둘 다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묻다가도 결국 답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멍멍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채우는 그런 순간.

그러고 보니, 사람의 겉과 속을 동시에 보는 건 어쩌면 평생 걸리는 숙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숙제를 하면서 조금씩 나아간다면, 어쩌면 언젠가는 겉도 속도 자연스럽게 함께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H는 글을 보고 말했다.

"글에서는 왜 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것이 제 정체성이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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