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프로젝트 - 20
축구 이야기를 하자면 참 끝이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마침 공식 경기라기보다는 행사처럼 진행된 날이었다.
한 팀으로 나가는 대신, 우리 선수들이 용병 형태로
각 팀에 한 명씩 배정되어 경기를 했다.
상금도 없고, 승패에 연연할 필요도 없는 날.
우리 팀 그대로 나가면 다른 팀과 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게임이 원사이드가 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냥 재미있게, 비까지 쏟아지는 가운데 뛰는 데 의미를 두었다.
나는 오늘 필드골 하나를 넣었다. 기록보다, 그 순간의 감각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강하게 부딪히기도 했다.
상대 선수와 충돌하면서 이가 조금 깨졌고, 입술은 터지고, 코피도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깨진 이보다 멀쩡한 이가 더 아팠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점점 실력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감각이 지금의 나에겐 꽤 큰 의미였다.
내일은 다른 두 분이 경기를 뛴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괜히 조깅이 하고 싶어졌다.
축구 훈련을 하다 보면 누가 봐도 안 할 것 같은 훈련이 하나 있다.
바로 골대 크로스바 맞추기 내기다. 전맹 선수들도 곧잘 맞춘다.
나는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맞추고 싶은 욕심도 든다.
그리고 볼을 찰 때도 그냥 차는 게 아니다.
키퍼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공의 높이와 속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한다.
이게 또 묘하게 쫄깃한 재미가 있다.
축구는 단순한 개인의 싸움이 아니다.
가이드의 역할, 키퍼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드에 있는 네 명의 호흡이 맞아야 한다.
호흡과 수준이 균형 있게 어우러져야
경기 전체가 유기적으로 굴러간다.
잘하는 나라들의 경기를 보면
가끔은 "저건 그냥 비장애인 플레이 아니야?" 싶을 정도로
매끄럽고 복잡한 플레이들이 나온다.
그만큼 호흡이 척척 맞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기는 소리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내게 들리는 건 우리 팀 소리, 상대 팀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가이드의 목소리, 그리고 공소리까지.
그 많은 소리들 속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내야 한다.
그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내가 지금 경기장의 어디쯤에 있는지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이런 감각은 일상에서 길을 익히고, 공간을 체득하는 일과도 닮아 있다.
보이지 않지만, 익숙해지고, 기억하고, 조금씩 기준을 세우며 걷는다.
사실 삶도 다르지 않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삶 속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판단하고
움직일 기준을 찾는 건 매일의 일이기도 하다.
그 기준이 없으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작은 힌트를 모아 나만의 감각을 세우고,
믿음을 붙잡고 한 발씩 내딛는다.
축구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고,
보이지 않아도 채워지는 것이 있다.
오늘의 경기장도,
그 소리들 사이에서
충분히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