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30cm뽑기
수능이 끝났다. 잘 본 것 같진 않지만, 성적표가 나올때까지 어쨌든 자유다.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공고를 살펴 보다가 집 근처 롯데월드 어드벤쳐 입구 작은 카페에서 올린 공고를 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아이스크림 콘을 길게 뽑아주는 걸로 유명한 곳이었다.
익숙한 장소, 어렵지 않은 일일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찾아와보라고 하셨다.
가게는 작았고, 그 곳에서 오래 일한 것처럼 보이는 언니가 한명 있었다.
사장님은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하시며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셨다.
"핸드폰... 없는데요..."
그랬다. 2002년 12월, 그 당시에 고등학생에게 핸드폰이 막 생기던 시절이었다.
난 고3이었던 데다가 그리 필요하지 않아서 아직 핸드폰이 없던 찰나였다.
"그럼, 학생한테 어떻게 연락을 하니... 그럼, 절대 늦지 마"
사장님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허락하셨다.
약속은 꼭 지킬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해진 시각부터 출근(!)을 했다.
아이스크림 기계를 소독하고, 주방을 청소하고, 다른 일들은 그닥 어려운 게 없었다.
내 주된 업무는.. 아이스크림을 길게 뽑는 일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난 아이스크림이 길게 나올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다.
너무 짧은 상태에서 끊어버렸다. 한 30cm는 되어야 하는데...
"그냥 대고 있으라고!!"
날 가르치던 알바 언니가 화를 냈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몰랐다.
아이스크림이 넘쳐서 손에 묻을까봐 그랬을까?
아니면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져서 혼날까봐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난 낯설고 무서웠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모든 것들이.
가게를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는건 가르쳐주는 대로 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아이스크림은 온전히 내 손으로 잡고 내 손으로 레바를 당기고,
내 감으로 손을 돌리면서 길이를 조절하고, 내 감으로 스탑해야 했다.
그게 어려웠다.
내 인생이 마치 이렇게 뽑다가 망쳐버린 아이스크림 같았다.
학교다니고 공부하고 누가 시키는 것만 해봤지,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컨트롤 해본 경험이 없었다.
기왕에 평생 다닐 것도 아닌데, 손에 묻던 바닥에 흘리던 어떻게든 해볼걸
그 당시에는 나를 혼내는 그 언니와 사장님이 너무 무서웠다.
세상에 더 무섭고 어려운게 많다는 것도 모르고.
결국 열흘만에 그만두었다.
착한 사장님은 아쉽다며 알바비를 추가로 더 챙겨주셨다.
대학 가서 더 좋은 알바하라고.
아마 내가 아이스크림을 계속 뽑을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나보다.
하지만 세상에 내 맘에 딱 맞는 아르바이트나 직장은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내 인생에 실패담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