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커피를 마셨다.
지인의 딸은 초3, 나의 딸은 초6. 그래서인지 대화 주제가 아이 교육 위주로 많이 흘러갔다.
"우리 애는 영어학원에서 ~~ 라고 해. 나는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우리 애는 수학을 ~~ 해. 넌 어떤 거 같아?"
고작 3년 먼저 키워본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 그저 공감을 원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딸도 처음 키워본다.
모든 부모의 가치관이 다르고, 모든 아이의 성향이 다르다.
그래서 교육에는 정답이 없다.
대치동에서 4세 아이가 영어학원 고시를 보고, 초등의대반이 생기는 것도, 그들의 문화 안에서는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일,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뤄지는 일일 것이다.
지인과 나의 생각의 공통점은 이것이었다.
"한국식 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다."
우리의 결론은, 경쟁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아이의 창의성이 억눌리는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살아야 되는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때는 사실 교육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조차 되도록 늦게 하고 싶었다. 한글을 알게 되는 순간, 그림책을 보고 상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글자에 먼저 눈이 가기 때문에 창의성에 지장을 준다고 들었다.
한글을 읽는 친구를 보고 부러워하면서 "나도 글자 알려줘"라고 먼저 이야기했을 때, 한글공부를 시작했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 원하는 때가 우선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최소 1년은 유치원을 다녀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 말을 듣고, 7세에 근처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는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 공무원과 다를 바 없는 조직문화, 그 속에서 교사들이 서로 책임져야 하는 시간대에 따라 이리 저리 떠밀리는 아이들, 사고에 대한 책임만 무섭고 아이들의 마음은 등한시 되는 문화, 그리고 닻이 고정되어 있기 않은 배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엄마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이러한데, 초등학교는 어떻겠냐는 회의적인 생각에 대안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한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초등1~3학년을 보냈다.
입학과 함께 코로나가 시작되어서 모든 학교에서 수업이 파행되었을 때, 우리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거의 모든 활동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 (전교생이 100명 미만인 곳은 학교장 재량으로 수업을 운영할 수 있었음.)
코로나 검사를 하고 체온을 재는 번거로움 정도는 있었지만, 아이에게 그 곳은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언니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활동들을 통해 아이의 성격이 변했고, 내면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곳에도 생각지 못한 단점은 있었다. 여러 고민끝에 지금은 그 곳을 그만두고 일반 공립학교 6학년에 다니고 있다.
아이는 자라면서 성향과 성격이 달라진다. 장래희망과 관심사도 달라진다. 아이는 항상 변한다. 이것은 부모가 항상 '대안'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일반 공립학교가 반드시 정답도 아니고, 대안학교가 반드시 최고의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기, 내 아이의 성향에, 내 아이의 진로에, 우리 가족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가장 좋은 대안은 항상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식 입시교육을 시킬 것이면(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남들이 하는대로 학원을 보내거나, 계산기계로 만드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내신도 챙겨야 하고, 수능도 따로 챙겨야 하고, 수행평가에 세특에, 이제는 고교학점제에 따른 과목선택까지 챙겨야 한다. 모든 것이 엄마들의 정보력, 아빠들의 재력에 달려있다.
그러나, 꼭 한국식 입시교육을 시켜야 할까. 나의 대답은 No 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미래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내용의 수학을 배운다. 교과서는 화려하게 바뀌었지만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개념설명, 문제풀이, 나와서 풀어보기, 틀린 것 풀어주기, 부자료 프린트 나눠주고 시험내기 등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그 사이 AI가 디자인하고, PPT 만들어주고, 그림그리고, 코딩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고, 컴퓨터과학 전공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있으며, 이제 곧 AGI 시대가 된다고 한다. 이제 로봇은 공항에서 안내를 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서빙하거나 커피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학습하고 대답하고 만들어내는 로봇가정부, 로봇티쳐, 혹은 그 이상이 등장할 것이다. 지금 6학년인 우리 딸이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뤄질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도 아이가 학교에서 지금과 똑같은 교과서로 미적분을 배우고 있다면 학교에 다니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대안교육을 고민한다. 공교육의 대안이 되는 대안교육이 아니라, 이 시대에 적합한 교육을 하는 대안교육을 찾고 싶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서로 협동하고 응원하고 창의적인 영역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것을 배우도록 하고 싶다.
이것이 그저 나만의 희망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