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는 학교, 꿈을 빼앗는 학교

by 유혜

부모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이의 교육기관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시키거나 어떤 성과를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을 돌아보자면, 아이가 행복하게 그 시절을 보낼 수 있는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 같다. 아이가 공동체 문화를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나와 다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꿈꿀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정어린이집, 구립어린이집, 병설유치원을 거쳐 내가 선택한 초등학교는 서울에 있는 기독대안학교였다. 그 곳은 초1부터 고3까지 12개 학년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각 교과는 따로 배우지만, 캠프, 축제, 동아리 등의 활동은 모든 연령 학생이 함께 한다. 전교생 100명 이내의 소규모라서 모두가 가족같이 지냈다. 외동딸이었던 우리 아이에게는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나이많은 언니, 오빠들이 있다는 자체를 행복해 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저녁 시간에 갑자기 질문을 했다.


"엄마,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직업에는 뭐가 있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오늘 학교에서 언니들이 자기를 너무 많이 도와줘서 고마워서, 자신도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초1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정말 뿌듯하고 감동적이었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이 있는데 모두가 서로를 돕는 직업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네가 미용사가 되든, 청소부가 되든, 그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꼭 선생님이나, 소방관이나, 대통령이 되어야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네가 그 일을 즐겁게 하면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온다고. 이 대화가 정말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아이가 이 질문을 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얼마 후에 아이는 어떤 계기 때문이었는지, 어느날 과학수사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건을 추리하는 게 재미있고, 안 풀리는 사건의 단서를 찾아서 피해자들을 돕고 싶다고. 아이의 꿈이라 자주 바뀔 것으로 생각했지만, 처음 가진 과학수사대라는 꿈은 꽤 오래 갔다. 그래서 학교의 허락을 받아 근처에 있는 과학교육기관에 따로 다니기도 했다. (사교육을 금지하는 학칙이 있었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고 싶으면 아이의 장래희망과 관련된 것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 사전에 선생님들과 의논 후에 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교장선생님부터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별도의 과학교육기관에 다니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등3학년이 되면서 고민이 생겼다. 당시 다니던 곳은 대안학교였기 때문에 이과로 진학하는 경우에 학업적인 부분을 지원받기가 어려웠다. 아이와 친하게 지내던 고3언니가 이공계열을 지망했는데, 학교에서 별도로 이과수학수업을 개설해주기가 어려워서 독학으로 공부했고, 결국 재수까지 했지만, 꿈을 접고 사회계열로 진학한 것이 결정적인 충격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공립학교에서처럼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수학학원에 다니고, 연산연습을 하고, 체계적으로 심화과정을 밟아온 것과 비교하면, 이 곳 대안학교에서 자랐을 때 자신의 꿈대로 이공계열에 진학하는게 쉽지 않아 보였다.


1년간의 고민 끝에 4학년부터는 일반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대안학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내면이 건강하게 자리잡힌 아이는, 공립학교에 처음 가서도 잘 적응했다. 친구들도 다양하게 사귀었고, 친구들의 무리와 무리 사이에서 관계를 현명하게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의 장래희망은 자주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3년동안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교를 바꾸자마자 꿈이 바뀐 것이 우연일까, 잘 모르겠다.


아이는 학교에서 자신보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이제 너도 연습하면 돼"라고 다독였지만, 어려운 수학을 잘 해야만 될 수 있는 직업으로 생각했을까, 더 이상 과학자가 그렇게 멋있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리고 자기는 미술을 할 때 제일 좋다면서, 디자이너가 될까 싶다고 했다. 이 역시 응원해주었다. 주변에 예중을 준비할 정도로 미술을 잘 하는 친구가 있어 혹 스스로 비교할까봐, "네가 꼭 예중갈만큼 미술을 잘 하지 못해도 괜찮아. 미래는 융합의 시대이고, 00이는 미적 감각이 있으니까, 나중에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길지 모르지. 지금은 미술을 그냥 즐겁게 하면 좋겠어" 아이는 이 말에 용기를 얻는 듯 했다.



6학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심각한,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과학선생님이 너무 싫다고. 아이 말을 전해들어 판단해 본 바로는, 6학년때 교과를 맡은 과학선생님은 아마 이 학교에 오래 계신 50대 여자분이신데, 수업에도 지각하고, 아이들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혼내기도 하고, 다른 반 아이들과 성적을 비교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자리를 비우기도 하시는... 교사로서 타성에 젖었다는 느낌이 드는 분이었다.


혹시 우리 아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싶어 처음에는 그냥 듣고 흘렸다. 그런데 주변에 다른 아이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과학선생님을 탄핵하자는 의견, 반장이 매번 과학시간마다 울었다는 이야기,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했지만 안 통해서 답답하다는 이야기, 2학기때도 같은 선생님이 계속 과학을 맡으면 그냥 공부 안하고 과학을 포기하겠다는 이야기, 선생님 때문에 과학이 너무 싫다, 등... 심각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원을 넣거나 해서 상부에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면 그 선생님도 기분 나쁘실 게 뻔하니, 그냥 학부모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 선생님께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수긍하시고 노력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교무실을 통해 그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통화를 마치고 들었던 생각은,

'이래서 아이들이 그랬구나' 였다.


아이들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그동안 이런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믿고 참아야 했던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그래도 내가 말을 전한게 있으니 조금 두고 보면 달라지시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선생님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1학기 교과를 일찍 끝내고 방학때까지 남는 시간은 영화를 보여주며 교실에서 자리를 비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며칠 후, 교육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학교와 함께 대처하겠다고, 다만 교과시수 등의 사정으로 2학기에 선생님을 교체하는 건 어렵다고. 선생님도 바뀌실 것을 약속하셨고, 교육청에서 충분히 감시하겠으니 조금만 이해하고 지켜봐달라고.


내가 원한 건 단순히 선생님의 교체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다같이 선생님 뒷담화를 하고, 과확책을 찢을 만큼 과학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 그것이 건강한 학교문화가 아니었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침묵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교육청에서도 나의 민원글에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나 있어서 공감하신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엊그제 개학을 했다. 2학기 회장선거에 나가고 싶은 사람은 준비해오라고 하셨는데, 우리 아이가 자신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반장이 되면 과학선생님한테 더 괴롭힘 당할 것이 생각나서 반장선거에 안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학교에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했는지 처음으로 말했다. 그리고 과학선생님이 앞으로 바뀌실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네가 반장이 되고 싶으면 선거에 나가고, 안 하고 싶으면 안 나가도 되지만, 그걸 선택하는 이유가 과학선생님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1학기때 반장은 많이 울었지만, 2학기에 만약 과학선생님이 또 반장을 울리면, (그 반장이 00이든 다른 친구든 상관없이) 그때는 정말 교육청 큰 선생님들이 가만히 보고 계시지 않을거라고. 선생님들, 엄마들은 다 너희들 편이라고. 이렇게 선생님과 아이들의 '편'을 갈라야 하는 상황이 마음 아팠다.


아이는 이제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일반 중학교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하다.

대안학교에서는 꿈을 꾸었지만 이루기 힘들었고, 공립학교에서는 꿈을 꾸기가 어렵다. 경쟁이 꿈을 빼앗고, 불성실한 일부 교사는 꿈을 짓밟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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