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기댈 곳은 시간연장 어린이집 뿐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 1.

by 유혜

해윤은 매일 구직사이트를 뒤졌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기 전에는 가끔 시간제 근무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보였는데, 왜 그마저도 안 보이는지 답답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르바이트 밖에 없었다. 이력서를 냈지만 카페 경험도 없고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 퇴짜 맞았다.


"애가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해요?"


사장님들의 공통적인 질문이었다. 해윤도 이해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도 한참 카페가 바쁠 때 아이때문에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면 곤란할테니까.


해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봤다. 해윤은 중국어를 어느정도 할 수 있었다. 그 특기를 살려서 초등학교 방과후 중국어 강사로 일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업체에 소속이 되어 일하면, 만약 아이 때문에 갑자기 빠지는 일이 생겨도 다른 강사님들이 서로 돌아가며 강의를 맡아줄 수도 있다고 했다. 방과후 수업시간이 2~4시 사이라 어린이집에 하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조금 빠듯하긴 했지만, 불가능하진 않았다. 해윤은 그 길로 어린이중국어 강사 업체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기관에서는 취업을 알선해 주기도 했는데, 유치원 방과후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알선받은 유치원은 대부분 해윤의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어린이집에 시간맞춰 도착하려면 일할 수 있는 지역이 넓지 않았다. 업체에서는 직접 수업할 곳을 뚫어보라고 했다. 해윤은 직접 만든 이력서와 수업 포트폴리오를 들고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에서는 강사파견업체를 통해 강사를 구하고 있었고, 이미 타업체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학교에서는 경험도 없는 해윤에게 수업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꼭 방과후 강사가 아니라 해도, 좀 더 많은 곳에서 다양한 대상에게 수업을 열어보려면 저녁시간에 활동이 가능해야 했다.


해윤은 생각했다. 하임이를 시간연장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정부지원금으로 시간연장반을 개설하고, 퇴근이 늦는 부모들을 위해 최대 밤 10시까지 아이를 맡아주기로 되어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시간연장반에 보낼 수 있다면, 어디든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중간에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야되겠지만,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덜 갈 수 있는, 일반 회사가 아닌 강사자리를 구할 수 있다면, 어느정도 융통성 있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윤은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해윤은 시간연장반에 티오가 있는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고 기다렸다. 연락이 올 때까지 해윤은 어린이중국어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이듬해 3월 새학기부터 티오가 있으니 등원하라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어린이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이 중국어 저녁수업 강사로 채용이 되었다. 해윤은 정말 기뻤다. 한편으로는 하임이가 잘 적응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들떴다. 기대를 가지고 어린이집 근처에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하임이가 만2세, 34개월째 되던 달이었다. 하임이는 마당이 있고 작은 미끄럼틀이 있는 새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아침이면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기대했고, 엄마와 인사도 안하고 쪼르르 교실로 뛰어들어갔다. 담임선생님은 하임이가 말을 너무 잘한다며 말하는 인형 같다고 하셨다. 적응을 너무 잘 하는 건, 엄마와 애착형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로서 거의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그동안 직장을 다녔다가 퇴사하는게 반복이 되어 하임이에게 괜한 혼란만 준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오히려 엄마가 잘 키운 거 같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큰 위안이 되었다.


해윤은 눈물이 찔끔 났다. 생사를 오가던 작은 아기가 어느새 커서 걷고, 뛰고, 어른처럼 말도 한다. 이제는 하루종일 엄마를 떨어져서 친구들과 잘 지내기까지 한다.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자기전까지 떠들어댄다. 하임이의 웃음과 하임이의 혀짧은 소리가 어느새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해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해윤은 어린이집 근처에서 방과후 중국어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이었다. 중국어 강사교육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열심을 쏟아 교구를 만들었다. 한자가 어려워서 중국어에 거부감을 느끼던 아이들이 어느새 중국어로 동요를 부르고, 중국어로 한 마디씩 떠들 때는 마음 깊은 곳에서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 예전에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어.'

해윤은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강사 파견 업체에서 소개받아서 영어유치원에서 방과후 음악수업도 했다. 해윤이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했다. 그 앞에서 영어로 활동을 하려니 식은땀이 났다.


"선생님, 이럴때는 sick 아니고 hurt라고 해야 하는데요..."


아마도 외국에서 살다 온 듯한 6살짜리 여자아이는 해윤의 영어표현이 이상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해윤은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수업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밤마다 영어표현을 공부했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지나자 아이들은 해윤의 영어실력과 상관없이 해윤의 진심을 알아주었다. 매달리고 안아주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가장 힘들었던 상황은 전화로 학부모 상담을 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의 엄마에게 연락해서 어떤 수업을 했고, 아이가 어떻게 활동했는지 안내하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보다 엄마들을 대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대부분 어느정도 소득수준이 높거나 또는 교육열이 특별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득수준도, 교육열도 특별하지 않고, 아직 아기를 학생들만큼 키워본 경험도 없는 자신이 엄마들과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이런 고민들은 기우였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해윤의 상담전화를 형식적으로 받으며 긴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몇 엄마들은 의외였다. 아이를 최고로 키우겠다는 욕심이 과해서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똑똑히 전해지는 엄마들이 있었다.


"저희 애가 한번만 더 말 안들으면 얘기해 주세요. 한번만 더 떼쓰면 유치원 그만두기로 약속했거든요. 약속했으면 지켜야된다는 걸 알려주려고요. 지난 번에 미술도 그랬고, 검도도 그랬어요. 조금 하다가 싫증나서 하기 싫다고 하길래 그만뒀고, 다시 하고 싶다고 얘기하길래 혼냈어요. 앞으로 절대로 안 시켜줄거라고 했어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얻은거라 강하게 키우고 싶거든요."


이런 말을 하는 엄마의 아이는 고작 우리 나이로 5살, 만3세였다. 해윤은 처음 이 아이를 봤을 때, 말이 아직 틔지 않은 줄 알았다. 사람을 피하고, 구석에서 놀고,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했다.


"얼마 전에 밑에 여동생이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질투나서 요즘 더 말썽부리는 거 같아요. 수업시간에 또 떼쓰면 절대로 받아주지 마세요."


그 아이의 엄마는 아무 감정 없는 해윤에게까지 공격적인 말투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상담을 끝내고 해윤은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가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사랑이 필요할까, 얼마나 엄마에게 따뜻한 말을 듣고 싶을까. 자신이 엄마가 되었기 때문일까, 남의 아이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해윤은 처음 느꼈다.




해윤은 보통은 저녁 7시, 늦은 수업이 있는 월요일은 저녁 9시에 하임이를 데리러 갔다. 7시에는 하임이를 포함해서 두 아이가 남아있었고, 9시에 데리러 가는 날은 하임이 혼자 남아 있었다. 하임이는 어린이집에서 저녁식사도 잘 먹었고, 항상 즐겁게 생활하는 아이로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하임이는 9시에 엄마를 만날 때도, 어린이집 마당에서 더 놀고 싶어했다.

'하임이가 어린이집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해윤은 이런 하임이에게 고마웠다.


그 때,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하임이가 이렇게 매일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준다면, 내가 경력을 이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해윤은 예전처럼 전공을 살려 경력을 이어가고 싶었다. 지금처럼 중국어와 영어 강사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상황에 맞춰서 시작하게 된 일일 뿐, 간절히 원하던 일은 아니었다. 해윤은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서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찾았다!'

해윤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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