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엄마가 보고 싶을 땐 기도해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1. 아기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

by 유혜

해윤은 새로운 곳에서 입사 합격통지를 받았다. 집에서 차로 15분거리에 있는 대학교 내 연구센터였다. 그것도 해윤이 정말 하고 싶었던 전공분야와 관련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일하고 연구하면서 단절되었던 경력도 이어갈 수 있고, 또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볼 수 있었다.


해윤은 정말 꿈만 같았다. 하임이는 시간연장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었고, 집과 어린이집과 직장이 차로 15분 거리 내에 있었다. 직장은 4대보험이 되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며,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었다. 제대로 된 월급 받으면서 아이도 케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해윤은 정치적으로 진보파였지만, 양육수당과 맞춤형보육으로 시간연장반을 만들어준 보수파 박00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도우미 이모님을 쓸 만큼 소득이 많지도 않은 위기의 가정에게, 기댈 곳은 시간연장 어린이집 뿐이었다.




새로운 곳에 출근을 하자마자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하필 그 일은 조만간 해외 출장을 다녀와야했다.

"아기가 있는데, 괜찮겠어요?"라는 담당교수의 질문에 해윤은 무조건 "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눈치를 주거나 부담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다른 직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기엄마이기 때문에 저래.'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은 해윤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일 뿐 아니라, 이후에 모든 후배 워킹맘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해윤은 좋은 선배 워킹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하임이를 보면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도 있어봤고, 도우미 이모님과도 지내봤고, 어린이집에도 오래 잘 있지만, 밤에 잠 잘때 엄마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10일간 엄마 없이 자야 한다. 과연 괜찮을까.


해외출장이 다 그렇듯이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출장을 떠나기도 전에 해윤은 이미 며칠째 야근을 하고 있었다. 하임이는 계속해서 어린이집에 9시까지 있어야 했다. 해윤은 하임이에게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장 가기 며칠 전부터 하임이에게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엄마가 이제 몇 밤 더 자면 하임이랑 잠깐 떨어져 있을거야. 그리고 열 밤 자고 다시 올거야. 엄마가 하임이 엄청 많이 보고 싶을텐데, 그럴때마다 하임이 잘 지내게 해 달라고 기도할거야. 하임이도 엄마 보고 싶으면 엄마 위해서 기도 많이 해줘. 그럼 엄마가 빨리 올께."


아직 숫자 개념이 없는 42개월된 아기였다. '열 밤'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잘 되었을까.


예정된 출국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해서, 자고 있는 하임이에게 뽀뽀하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출발했다. 오랜만에 해외에 나간다는 자체로 설렜다. 그것도 '유럽출장'이라니, 정말 멋진 워킹맘이 된 기분이었다. 하임이를 아빠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서 지구 반대편에 갔다. 이제 하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연락이 와도 당장 달려갈 수가 없었다. 집과 하임이 생각은 뒤로 미루고 맡겨진 출장 일정에만 온전히 집중해야 했다. 아무리 하임이가 걱정되어도 대안은 없었다. 하임이에게 이야기한대로 보고 싶은 만큼 그저 기도하는 수 밖에.


출장 4일째쯤 되었을 때,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오늘 바자회를 했는데, 엄마 없이도 물건도 사고 잘 놀았어요. 걱정마시고 잘 하고 돌아오세요"

빨간 코트를 입고 머리에 핀을 꼽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어린이집 마당에서 열린 바자회에서 물건을 고르는 하임이 사진이 전송되었다. 엄마가 없어도 옷도 잘 입었고, 머리는 못 묶었지만 예쁜 핀을 꽂았고,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활동도 잘 하고 있었다. 해윤은 호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감사의 기도와 안도의 눈물이었다.


약속했던 '열 밤'이 지나고, 저녁때쯤 집에 도착했다. 집에 짐을 놓고 바로 하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


"하임아~ 엄마 오셨네~" 선생님께서 하임이를 부르셨다.

그 소리에 교실에서 놀고 있던 하임이가 후다닥 뛰어나오며 해윤에게 안겼다.


"엄마! 나 기도 많~이 했떠!"


해윤은 하임이 앞에서 절대로 울지 않으리라고 몇번이나 다짐했었다. 그저 웃으면서 잘 지냈냐고, 기특하다고 칭찬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보고싶을 때는 기도하라"는 말을 기억하고 하임이는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해윤이보다 어린 하임이가 훨씬 더 강했다.


해윤은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린 채로 걸었다. 양쪽으로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하임이는 신나서 엄마 한 번, 아빠 한 번 바라보며 깡총깡총 뛰었다.


이제 막 떠오른 달빛이 하임이 가족이 걷는 골목길에 길게 비치었다.

곧 어두운 시간이 찾아올 때 이 달빛을 기억하라는 듯...

이전 06화ep6. 기댈 곳은 시간연장 어린이집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