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1. 아기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지
유럽출장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해윤은 회사 일로 매일 바빴다. 하지만 이젠 하임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엄마 없이 열 밤을 씩씩하게 보낸 아이에게 특별한 보상은 필요없었다. 하임이에게는, 그저 엄마가 약속을 지키고 돌아왔다는 안도감, 이제 엄마가 자신의 옆에 계속 함께 있을 거라는 확신, 그거면 충분했다.
하지만 해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받을수록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많은 일이 맡겨질수록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육아책마다 생후 3년간의 애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써있었는데, 해윤은 그 일도 대단하게 해냈고,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밤늦게까지 잘 지냈다. 해윤의 마음 속에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솟아올랐다.
물론 가끔 힘든 경우도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임이는 주로 금요일에 많이 아팠다. 아마 주중에 계속 어린이집에만 있었던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주말에 집에서 쉬고, 월요일 아침에 소아과에 일찍 가서 의사허락을 받으면 그 날로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꽤 오래 아프기도 했다.
수족구에 걸린 어느 날, 주말동안 쉬었고, 해윤이 하루 연차를, 남편이 하루 연차를 썼는데도 병세가 다 낫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이었다. 해윤의 회사에서는 수요일 오전 11시마다 모든 부서가 모이는 전체회의가 있었다. 해윤은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하임이를 데리고 이른 시간에 소아과를 찾았다. 소아과는 항상 북적였다. 대부분 아이를 둘 이상 데리고 온 젊은 엄마가 앉아 있거나, 할머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외동이면서 엄마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하임이 뿐인 것 같았다. 그 날 하임이를 본 의사선생님께서는 아직 완치는 되지 않았지만 증세가 많이 호전되어서 전염성은 없을 것 같다며 어린이집에 등원해도 된다고 하셨다. 해윤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하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해윤의 집에 도착해계셨다. 해윤은 하임이를 외할머니에게 넘기며 말했다.
"어린이집에만 데려다 줘. 점심약이랑 설명은 내가 선생님께 톡으로 설명할께!"
시계를 봤다. 곧바로 회사로 향하면 11시를 맞출 수 있었다. 지각한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하임이가 엄마의 목을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 엄마!! 으앵~!!"
하임이는 컨디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도 했고, 엄마랑 집에서 쉬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갑자기 나타난 외할머니가 달갑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외할머니가 나타날 때마다 이렇게 엄마가 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외할머니의 큰 목소리와 거친 행동이 무서워서 엄마품을 더 파고들면 할머니는 더 호통을 쳤다.
"엄마 회사가게 이리 와, 좀! 이걸 그냥 확!"
하임이는 할머니 품에 가려 하지 않았다. 해윤은 그런 하임이를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하임이를 사랑하는 것은 의심치 않으나 할머니의 말과 행동이 하임이의 불안을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하임이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하임아, 엄마 회사 갔다가 금방 올께. 할머니랑 어린이집 갔다 와."
"시러, 엄마가! 엄마가!!"
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데려다주라는 말이었다. 해윤이 하임이를 안고 뛰었다. 할머니는 뒤에서 가방을 들고 뛰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그제서야 하임이는 현실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엄마와 눈물의 인사를 했다.
"엄마, 나 먼저 갈께! 집에 잘 가!"
친정엄마를 뒤고 하고 해윤은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11시 20분, 회의 진행 중에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하임이에게나, 친정엄마에게나, 회사에게도, 모두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가끔 힘든 상황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해윤은 직장생활이 즐거웠다. 그리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혼 전에, 출산 전에 꾸었던 꿈을, 이제는 다시 꾸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검은 연기를 내며 스물스물 올라왔다.
해윤은 그것이 선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었고, 출산과 육아로 잠시 미뤄졌지만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꿈을 다시 작동시키는 것은 신의 뜻이며, 지금이 적기라고 느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아이가 아직 어릴 때 하루 빨리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이 하임이에게도 멋진 엄마가 되는 길이며, 하임이의 안정적인 생활을 돕는 방법일 것이었다. 함께 유학을 꿈꾸었던 남편은 해윤의 걸음에 동행할 생각이 없었다. 가려면 혼자 가라고, 그리고 하임이는 시댁에서 봐주실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남편의 역사를 보아 믿음이 가지는 않았지만, 친정보다는 시댁에서 하임이를 더 잘 돌봐주실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하면서 유학까지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하임이를 데려와서 씻기고 또 노트북을 켜놓고 일을 했다. 하임이는 그런 엄마가 늘 아쉬웠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해윤의 마음은 어딘가 붕 떠 있었다.
하임이는 그런 엄마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을 두고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때부터 엄지손가락을 빠는 습관이 있었다. 불안하면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하임이에게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하임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거나 달라진 게 있다고 말하기가 어려웠지만, 마음속으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히 외출을 해야 하는데 주차문제로 윗집 아저씨와 해윤이 전화 통화를 하더니,
"잠깐만 집에 있어. 엄마 차 빼고 올께"
라며 해윤이 집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하임이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평소에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던 그것이 지금 닥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상황, 자신이 혼자 남겨지는 상황.
해윤이 곧 돌아왔을 때, 하임이는 방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울고 있었다.
"하임아, 왜 이러고 있어? 빨리 나가자."
외출시간이 급했던 해윤은 하임이를 들쳐 안고 차에 태웠다. 그 날 하임이가 느꼈던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해윤은 보지 못했다. 주차 문제로 하임이를 집에 혼자 둔 것은 고작 10분이었다. 씩씩하게 잘 큰 5살 아이가 집에 혼자 10분 정도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하임이는 계속 쉬가 마렵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해윤은 그제서야 하임이가 놀랐을 상황에 대해 생각했고,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한의원에도 가보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의논도 했다. 그러나 빈뇨와 손가락 빠는 증상은 나날이 심해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