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마음의 병

가치관 대혼란 육아 프로젝트 Part3. 인생에 대안이 있을까

by 유혜

하루아침에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경기도 금성시로 왔다. 하임이 눈에 이 곳은 시골에 가까웠다.


"엄마, 여긴 시골이야? 공기가 정말 맛있어!"


자전거 도로가 쭉쭉 뻗어 있는 너른 평지를 달리면서 하임이는 즐거워했다.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새로 지은 샛별 초등학교는 여전히 공사중이었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되었다. 모두 부모의 청약당첨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서 새로운 학교에 모인 상황이었다.


"안녕? 나는 정하임이야, 나랑 친구할래?"


하임이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겼다. 그 모습을 보며 해윤은 대안학교에 처음 갔을 때 하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교실에 들어가기조차 못하고 두려움에 떨던 모습, 엄마를 붙잡고 30분씩 울던 모습, 그 모습이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새 분양 단지라서 그런지 아파트 안에는 영유아 아이들이 많았다. 어린이집이 끝날 시각에는 놀이터에 아기들과 엄마들이 북적였다. 하임이는 같이 노는 아이들 중에서 아기동생들을 가장 잘 돌봐주는 아이로 유명했다. 그래서 아기엄마들이 하임이를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은 자신의 놀이가 우선일 뿐 주변 동생들을 굳이 같이 놀려고 하지 않았다. 하임이가 친구를 잘 사귀고 위아래로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대안교육 3년의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하임이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엄마, 오늘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 나보고 '야, 정하임, 좀 빨리 와' 이랬는데... 전에 나 괴롭히던 준성이 오빠가 생각났어..."


준성이는 대안학교에서 하임이를 놀리고 괴롭히던 한살 위 오빠였다. 하임이와 그 아이는 별로 안 친했는데, 그 아이가 던지곤 했던 말을 듣자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었다. 이 밖에도 하임이는 자꾸만 예전에 다니던 학교를 그리워 했다.


"저기 방금 지나간 언니 있잖아. 소미언니인 줄 알았어."

"자꾸만 언니들이 보고 싶어..."

"다들 잘 있을까?"


마치 상사병이 극심해서 환영을 보고 환청을 듣는 것처럼, 하임이는 옛 학교에 대한 지독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해윤은 이런 하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든 서울에 있었다면 자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괜히 청약에 당첨되서 아이를 정든 곳에서 떼어 이런 먼 곳까지 뚝 떨어뜨려 놓은 건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해윤은 5월 연휴를 맞아, 하임이와 함께 서울나들이를 계획했다. 하임이는 들떠서 전날 잠을 자지 못했다.


"언니~!"

"하임이다~ 하임아~!!"


행복한 학교를 방문한 순간, 아이들과 하임이는 기쁨의 상봉을 했다. 그 모습을 해윤은 멀리서 지켜보았다. 하임이에게 이 곳은 어떤 의미였을까. 외동으로 태어나 엄마와 단둘 뿐이었던 세상에서 또다른 형제, 자매들을 얻은 곳이었을까. 낯선 공원과 박물관들을 엄마없이 언니들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준 곳이었을까. 캠프날 밤에 엄마가 없어서 눈물을 훌쩍일 때 옆에 와서 같이 토닥이며 재워주신 따듯한 선생님들을 만난 곳이었을까.


"학교랑 언니들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났더니 마음이 편해졌어. 이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돌아오는 길에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하임이가 말했다. 하임이는 자신의 소중했던 추억이 없어져 버릴까 두려웠던 건지도 몰랐다. 이제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불안이 잦아들었다.




해윤은 아이 학교문제, 청약과 이사문제, 집안일 등으로 대학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렵게 이어오던 대학원 생활은 멀리 이사를 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마지막 한 학기에는 해외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줌수업으로 학점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여러가지 형편을 봐주시고, 끝까지 응원해주신 교수님께 제대로 보답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해윤은 좌절스러웠다. 지금 해윤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한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랐을 한국의 경단녀 육아맘의 현실은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하기 힘들 터였다. 해윤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해윤의 마음에는 다시 한 번 좌절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이번 것은 꽤 컸다. 도전하고 좌절하는 것이 반복되다보니 다시 무언가 도전할 힘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해윤은 병원을 찾았다.


"지금까지 정말 힘드셨겠어요. 약을 드시면서 조절하면 훨씬 나아질 겁니다."

의사는 우울증 약을 처방했다.


계속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은 해윤의 장점이었고, 이 시대 여성들이 가르침 받은 방식이기도 했다. 10대 때 여성들은 학교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남학생들과 동일하게 배웠고, 동등하게 경쟁했다. 장차 맞이할 20, 30대의 사회가 남성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보고 들었기에 더 치열하게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여성들의 인생은 수능이나 대학으로 좌우되지 않았다.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윤에게는 그 존재가 없었다. 아이가 무서워하는 외할머니에게 맡기는 것도, 지방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얼굴보러 가는 것도, 엄마가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너무 모든 것을 혼자서 완벽히 해내려고 한 것 같았다. 무엇을 얻으려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인데, 해윤은 스스로의 욕심을 탓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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