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 난민이 되다

Part1. 다가구 라이프

by 유혜

남편의 월급이 불안정했던 사실은 내게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월급이 많이 들어올 때는 저축해뒀다가 생활비가 부족하면 꺼내쓰는 방식이었다. 월급날짜나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평소에 꾸준히 아껴쓰는 것이었다. 이런 패턴 때문에 예적금은 큰 금액으로 할수 없었다. 소액으로 꾸준히, 그리고 여기저기 이자많이 주는곳으로 분산해서, 특히 연말에 예적금특판을 많이 이용했다. 서울 여기저기 고금리특판 파는 곳을 찾아다니며 가입했다. 그러다가 생활비가 부족해지면 그중에 제일 금리 낮은곳을 깨서 사용했다.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은 시어머니께서 2천만원을 더 도와주셨다. SH 지원금 4500만원, 기존 보증금 7500만원, 그리고 그동안 아끼며 모은 돈 일부를 합치니 1억6천만원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SH지원금을 받는 임차인을 꺼리는 임대인이 많았다. 비슷한 제도가 LH에도 있었는데, 부동산에 "LH, SH 지원금 가능한 집을 찾아요"라는 말만 해도 부동산에서 "그런집 없다, 못찾는다"라고 했다.


이 제도는 임차인에게 무이자로 대출해주었고, 임대인에게는 복비도 지원해주니 좋았다. 하지만 지원주택으로 선정되기 위한 주택심사가 까다로웠다. 부동산은 서류준비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했고, 임대인은 자기 재산이 SH에 심사대상이 된다는 것에 (자기 재산이 까발려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제도에 선정된 대상자들을 엄청 가난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때문에 대상자들은 금액에 비해 좀더 낮은 퀄리티의 집들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 카페에는 이 제도들에 선정된 대상자들이 결국 지원금을 포기했다는 글이 많았다. 걱정하며 기다리던 어느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 깨끗한 다가구인데, 집주인이 SH해준대요. 지금 빨리 오세요."


도착해서 본 집은 최소한 지금 사는 곳보다는 나았다. 다가구 투룸이었지만 1.5층이라 편했고, 깨끗했고, 아이 어린이집도 가까웠다. Sh지원금을 쓸수 있다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왜 이렇게 집을 못 빼고 그래!"


큰 소리를 내며 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타났다. 다가구 맨윗층에 살며 월세 받고 수도세 관리하며 사는 일반적인 노인들이었다. 아마 집을 내놓은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집이 잘 안빠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부동산에서 SH이야기를 했고 집이 안빠지니 어쩔 수 없이 승낙한 듯 했다.


"읍시(없이) 산다는데 도와줘야지"


임대인은 큰 자비를 베푸는듯 우리를 대했다.

그렇게 나는 두번째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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