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임차인이 된 맹모

Part3. 내 집 지키기

by 유혜

이사갈 때 가장 신경쓰인 것은 아이 학교였다. 혹시나 적응하기 어려울까봐 교회친구들이 많은 곳으로 학교를 정했고 그 주변으로 집을 찾았다. 그 곳은 대부분 빌라가 많고 구축 아파트가 조금 있는 동네였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교회에 갈 때마다 근처에 집을 보러 다녔다. 몇 주간 돌아다닌 끝에 20평대 구축 아파트 월세를 찾았다. 편과 아이는 빌라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나는 다시는 빌라에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구축이고 월세가 비싸도 아파트여야 했다.


12월초, 서울로 돌아왔다. 불과 10개월만에 나는 다시 임차인이 되었다. 이전에 살던 임차인이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지 집안 곳곳이 문제였다. 비가 오면 벽으로 물이 새서 방수공사를 했고, 화장실 하수구가 막혀있어서 수리기사를 불렀고, 환풍기를 교체했고, 가스레인지는 고장나서 인덕션을 썼다. 내가 알아서 수리하고 영수증을 보내주면 임대인은 비용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화장실은 오래된 탓에 바닥이 꺼졌는지 사는 동안 내내 물이 잘 빠지지 않았고, 베란다 곳곳에는 여전히 결로가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다행히) 아파트와 빌라간 차별은 없었다. 오래된 동네이고, 구축 아파트라 그런지 서로 감정적인 거리는 없어 보였다. 교회사람들도 모두 동네 이웃이었다. 아이들도 아파트든 빌라든 상관없이 서로의 집을 왕래하면서 함께 놀았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우리 집에서 큰 길을 건너면 또 다른 빌라촌이 있었다. 아이가 어느날 친구를 따라 그 동네에 가서 처음 놀았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나에게 말했다.


"엄마, 거기는 버려진 동네같아."


뜨끔했다. 아이의 눈에 우리가 사는 곳과 그 곳이 달라보였던 것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내 아이는 기왕이면 아파트에서, 기왕이면 신축에서, 기왕이면 서울에서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가구, 다세대에 사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확실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00아, 그 곳에 가서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구나. 그런데 우리도 00이가 애기 때는 그런 집에 살았었어. 거기에도 열심히 일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 만약에 00이가 방금 한 말을 그곳에 사는 친구가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어쩌면 지금 같은 반 친구, 교회 친구 중에 그곳에 사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어. 사는 집의 겉모습으로 그 동네를, 그 사람을 평가하지 말자."


아이는 다행히 내 설명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했다. 아파트는 아무래도 관리비를 내고 공동구역도 잘 관리되니 깔끔해보일수 있지만, 빌라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 눈에는 그런 점이 비교되어 보였을 수 있다. 내가 아이에게 괜히 예민했던건 아니었을까.




시간이 흘러 2년 계약만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학군지로 이사갈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낯선 그 곳으로 이사가서 다시 적응을 걱정하느니 그냥 익숙한 이 동네에 남기로 했다. 다만 중학교 배정은 좀 걱정되었다. 현재 주소지에서 배정받는 곳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듣기로는 빌라 아이들이 많이 배정된다고 했다. 이 곳 아파트는 학군이 좋지 않아 젊은 사람들이 적고 그래서 주차장 자리도 많은거라 했다. 빌라와 아파트에 대한 비교는 중학교 배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사를 가려고 보니 주변 월세가 많이 올라 있었다. 학교문제만 아니라면 계약연장을 하는게 현명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맹모의 DNA가 흐르고 있었다. 결국 이사를 결정했고 집주인에게 말했다. 집주인은 월세를 그만놓고 매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언제 나가든 보증금 돌려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니 이사갈 곳을 구해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이사갈 집을 알아보면서 이 집을 매수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열심히 집을 보여주었다. 내 보증금을 돌려 받든 안 받든, 그게 임차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임차인이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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