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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샘 Mar 13. 2024

대가 없는 동행

14살 아이, 29살의 나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역 가운데에서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저기요, 길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네, 그럼요. 어디 가세요?”


“제가 지하철은 처음 타봐서.. 길을 아예 모르겠어요. “


사정을 들어보니 서울 사는 친구를 만나러 나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모르겠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터리가 없어 폰도 꺼졌다고.


다행히 나와 가는 방향이 같아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에 올랐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이제 막 중학교 올라갔어요.”


안경 사이로 보인 똘망똘망한 눈 너머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렇구나. 저는 29살이에요. 언니, 아니 이모인가..? “


나름 호칭 정리를 해보려다 느껴진 나이차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나는,


“내려서 집 가는 길은 찾을 수 있겠어요?”


“아.. 니요. 어떻게든 가볼게요..”


“같이 가줄게요. 같이 내려요. “


우리 집에서 30분 정도 더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어쩐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아이가 처음으로 싱긋 웃었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가는 동안 우리는 친구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노래를 좋아하는 중학교 1학년 친구, 꿈은 의사이고 내일 당장 학교는 가기 싫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버스킹을 보러 나왔다고, 이렇게 나와 본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 속에

나의 중학생 시절이 스쳐갔다.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역에서 우리는 부랴부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무사히(?) 집 앞까지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정말 감사해요! 진짜 감사해요.”


손을 흔들고 다시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왠지 모를 행복감이 올라왔다.


대가 없는 동행.


나는 29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의 손을 잡고 걸어왔을까,


길을 잃었을 때,

마음이 가난했을 때,

주저앉아 일어날 힘이 없었을 때.


나 또한 오늘 이 아이처럼 어떤 이의 손을 잡고 걸어갔겠지.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었다.


그 아이에게만큼은 오늘이 따뜻하게 기억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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