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어느 때부터인가 1달에 두 번 정도 하던 달리기마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왼쪽 발꿈치 쪽에 염증이 생기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 외에도 미세먼지가 나쁨을 기록한 날이 많다 보니 달리는데 주저하게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왼쪽 발꿈치에 염증이 생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척추관 협착증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왼쪽 허리만 아팠는데 조금 후에는 통증이 왼쪽 엉덩이로 내려갔고, 다시 왼쪽 종아리로 통증이 옮겨졌습니다. 10m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왼쪽 다리의 통증이 심하였고, 왼쪽 종아리에 근육 저하증이 생겨 지금도 왼쪽 종아리의 굵기가 오른쪽 종아리보다 얇아져 있습니다.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고 몇 달을 고생한 끝에 어느 정도 증세가 호전되어 걸어 다니는데 큰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일매일 스트레칭을 하다가도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은 생각에 스트레칭을 게을리하거나, 오래 앉아서 일을 하게 되면 어김없이 허리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평소보다 좀 많이 걷거나 오래 서 있을 때도 허리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칭 외에는 몸을 움직이는 일에 소극적이게 되었습니다.
사명에서 퇴직을 한 후, 1. 19.부터 1. 29. 까지 스페인 여행을 하게 되면서 걷기의 새로운 매력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야, 마드리드에 이르는 동안 지하철, 버스, 비행기, 고속전철, 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는 하였지만, 하루당 적게는 9,775걸음 많게는 25,180걸음을 걸었습니다. 11일 동안 하루 평균 18,325걸음을 걸었습니다. 스페인 여행 전, 평소에는 얼마나 걷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고, 1만 걸음을 걷는 일은 요원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10,000걸음 이상 걷는 게 힘들었는데, 힘들 때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걷고 하는 일이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두 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알아가는 일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문득, 하정우 배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이 문득 떠올랐고, 한국에 돌아가면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정우 배우가 걷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하정우 배우가 2010년 [국가대표]로 백상 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후, 2011년 백상 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시상을 하러 하지원 배우와 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지원 배우의 ‘이번에도 상을 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물음에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게 된다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을 하겠다는 공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에도 [황해]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서 해남까지 577킬로미터를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터널]을 위해 5일 동안 걷기만으로 4kg 감량을 했던 일, 하와이에서 하루 10만보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일, 일상생활에서 하루 3만보를 확보하는 방법, 배우로 살아가면서 얻은 깨달음 등의 이야기가 책 속에 펼쳐져 있습니다.
일일3만보를 걷기 위해서는 여기에 더해 우리 걷기 멤버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생보’, 생활 속 걷기를 실천하는 걷이 중요하다(걷는 사람, 하정우 중 p. 63).
하정우 배우는 하루 3만 보 확보를 위한 생보를 실천하는 데, 서서 이야기 나누기, 서서 텔레비전 보기, 제뛰(제자리 뛰기),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오르내리기 등을 한다고 합니다.
자신감에 대한 하정우 배우의 정의는 제가 카오스 이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보낸 시간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열심히 한 일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걷는 사람, 하정우 중 p. 223)
하정우 배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자기 전에 기도하고, 촬영장에 가기 전에 기도하고, 순간순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기도한다. 나에게 기도란 먹고 숨 쉬고 걷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혹은 아예 종교가 없더라도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걷는 사람, 하정우 중 p. 288 ~ p.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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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걷는 사람, 하정우 중 p.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