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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변호사 Jun 18. 2021

그렇게

바람이 분다

그렇게     


산 위에서 시작한 바람은

바다에 가고 싶어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며

내려오기 시작한다     



바다가 보고 싶어

바람이 속삭이자

이슬 먹은 나뭇잎이

끄덕인다     



땀 흘리는 등산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자

등산객은 미소를 지으며 땀을 닦아낸다    


 

넓은 들에 이르러 이름 모를

푸릇한 이들에게, 황금빛 이들에게

반갑게 손뼉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지나간다



가다 보니 길을 잃어 빌딩 숲 사이를

맴돌기만 한다

하늘에 닿을 듯한 기둥에 부딪쳐

흩뿌려진다

어느 한산한 골목길에 들어서서

쓸쓸히 거닐어 본다   


  

슬퍼 눈물지으며 가다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만나

한껏 그들이 된다

바람이 불어 시원하네, 바람아 고마워

금세 눈물이 씻겨지고 환한 웃음으로 밝아진다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고

아이들은 하나둘 운동장을 떠나간다

더 오래도록 함께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에 남겨두고

다시 홀로 남은 바람은

빈 운동장과 교실 벽 사이를 서성일뿐     



많은 곳을 거쳐 왔지만

다시

그렇게

이어지고

아직 바다에는 가보지도 못했는데



주저앉았다가 떠밀려 가고

그렇게

가다 보니 그런대로 가게 되는구나



이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가다가 막히면 저쪽으로 가보면 되겠지     



언젠가 바다에 도착할 것을 믿으며

발걸음을 천천히 꾸준하게 옮긴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그 끝에서

바다가 뿜어내는 해와 달이 있는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그렇게 바람이 분다



-2021. 6. 18.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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