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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준 변호사 Feb 15. 2019

다양성

원칙과 포용

 부모님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성경 말씀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매주 교회에 가서 성경 말씀을 들으며 살아왔던 터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신 내용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 같은 일들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졌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수난의 파사드

 그 과정에서 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면 그 어려움에 관해서 직접 하나님께 토로하기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잠시 방황을 하면서 이리 저리 흔들렸으나, 저의 뿌리가, 기독교임을 은연중에라도 잊지는 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고향인 남원에서 복학 준비를 하던 중 우여 곡절 끝에 남원 동북교회 주일학교의 중등부 선생님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등부 선생님을 하게 되다 보니 주일학교 교재를 보면서 다시금 성경책을 읽어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복학 후, 매주 전주에서 남원으로 오고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알던 내용을 직접 읽으면서 되새김질 하게 되자 전에는 모호했던 내용들이 조금씩 명료해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에 복학하여 명료해지는 성경과 저만의 깨달음으로 학업에 열중하던 중 다양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교양과목 중에 교양철학(과목 명칭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을 듣게 되었는데, 기독교의 사상은 논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상가들의 비난을 받아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신학자들 또한 그 비난에 대해서 논리로 반박해 왔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타 종교와는 교리 자체로 양립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스쳐지나갔던 일이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한 복학생에게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같은 수업을 받던 동기들과의 토론 속에서 기독교의 교리는 이러이러해서 문제다라는 지적을 받게 되면 저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그러한 문제는 저러저러한 것이다라고 반박하면서 갑론을박하였으나, 다양성을 풀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마음 한 켠에 둔 채 저만의 깨달음을 얻고자 저의 원칙인 성경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절치부심 하였으나, 여전히 풀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깨지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제가 “원칙”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간에 성경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으로 인해 제가 성경을 쓴 사람이고, 제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세운 사람인 것처럼 사고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약하고 무지한 사람일 뿐이고, 성경을 통해 성경에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 알게 된 것일 뿐이며, 그로 인해 도움을 받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제가 속한 종교와 다양성의 관계를 “원칙과 포용”으로 풀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원칙”은 성경이고, 수 천 년 동안의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는 성경을 저 같은 사람이 감히 가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 “원칙”에 “포용”된 사람일뿐인 것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원칙”에 “포용”된 사람일뿐입니다. 남는 문제는 “포용”된 사람인 제가 다른 “포용”된 사람들에 대해 갖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에 한계를 설정해 나가는 것이 제 삶이 다하는 날까지 저를 닦아나가야 할 길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다양성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션(The Mission)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식민주의자들이 총칼로 원주민들의 삶을 침탈하려 할 때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가 이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 대립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가브리엘 신부는 ‘신부의 방식’으로 원주민들과 생사를 함께 하려 하였고, 로드리고를 비롯한 다른 신부들은 ‘총칼’을 들고 맞서 싸우려 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을 도우려는 방식에 대해서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는 서로 언쟁을 벌였으나, 결국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원주민들을 돕습니다. 로드리고는 가브리엘 신부를 찾아가 총칼을 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대해서 가브리엘 신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옳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틀리다면 나의 축복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무력이 옳다면 사랑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고, 나는 그런 세상에서는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로드리고, 나는 당신을 축복할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철학으로 영화보기 영화로 철학하기]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만약 당신의 행동이 옳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오”라고 말하는 가브리엘 신부의 태도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목숨을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상대방의 일리(一理)와 삶의 양식을 존중하는 성숙된 신앙인의 자세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진리로서 믿고 헌신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길을 비진리라고 섣불리 매도하지 않는 삶과 여유와 인성(人性)의 성숙이야말로, 어쩌면 이 영화에서 우리가 간취할 수 있는 최대의 메시지가 아닐까.
 “신부의 방식”을 포기한 채 검을 들고 피의 전장(戰場)으로 달려가는 로드리고에게 “나는 당신을 축복할 수 없소”라고 분명하게 자신의 신념과 태도를 밝히면서도, 자신과 다른 길을 걷는 그를 독선적으로 정죄하거나 매도하지 않고, 그 다른 길 속에서 신이(神異)하고 은밀하게 함께 걸어가실지도 모를 하나님의 걸음을 예견해보는 성숙! 검을 차고 돌아서는 로드리고에게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벗어 건네주는 가브리엘 신부의 태도는, 어쩌면 신념으로 말미암은 모든 형태의 분쟁을 해소시킬 수 있는 하나의 전범(典範)을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 형성되었던 저만의 카오스 이론은 제 자신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주었고, 다양성에 대한 저만의 해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기초가 되어 주었습니다. 언제인가는 한 번쯤은 저만의 이론을 글로써 정리를 해보고 싶었는데, 20여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글을 써봅니다. 대단하고, 거창하고, 완벽한 이론이어서가 아니라 젊은 날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면서 얻은 저만의 소중한 결과물이었고 버팀목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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