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형준 변호사 Mar 08. 2019

붕어빵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거리 이곳저곳에  따뜻하고 더웠던 날 동안 잊혀 있던 붕어빵이 등장합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붕어빵은 겨울을 지나면서 점차 사라집니다. 봄이 찾아오는 지금에는 추울 때 간혹 입을 즐겁게 해 주던 붕어빵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취를 감춥니다.    




  1996년 6월 경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하였는데, 그 해, 겨울 승철이라는 친구와 함께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승철이의 어머니께서는 붕어빵 틀을 보관하고 계셨고, 붕어빵 반죽 레시피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승철이의 어머니께서 도와주셔서 천막이 둘러 있는 붕어빵 틀을 놓을 선반을 마련하여 남원 시청 근처에 있는 학원 건물들 사이의 공간에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였습니다. 1주일 정도 붕어빵을 팔면서 학원에 다니던 아이들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나름 단골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1주일간의 영업 실적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고, 이대로라면 다음 학기 학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승철이와 저의 붕어빵 장사는 1주일로 막을 내려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사를 하던 당일 오후 2시경 출근을 하였는데, 붕어빵 틀을 놓은 선반의 천막이 불에 탄 흔적이 있었습니다. 옆 건물 1층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이 저희를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동네 아이들이 성냥으로 천막에 불을 붙이는 장난을 하였는데, 천막이 타들어 가면서 나오는 불똥이 가스통 호스에 튀어 자칫 큰 화재로 번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결국엔 학원 건물주가 오셔서 젊은 대학생 2명이 붕어빵 장사를 한다고 하니 그냥 두었는데, 큰 화재가 날 뻔한 일이 생겨, 더 이상 장사를 하게 둘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1주일 동안 재밌고 즐겁게 장사를 했던 정든 장소를 떠나려고 보니 불이 경미하게 그쳐 다행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인근에서 여러 가지 사정상 장사를 할 수 없었고,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붕어빵을 구었지만, 붕어빵이 전혀 팔리지 않아 붕어빵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2004년 경에 다시 한번 붕어빵 장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법시험 2차를 두 번째로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전북대학교 병원 앞 쪽에 있는 독서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독서실은 한 달에 5~6만 원을 내면 숙(宿)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독서실에서 생활을 하던 병철 형님은 1 후에 공무원 시험이 있었는데, 지금부터 자리 잡고 붕어빵을 팔아야 1 후에도 붕어빵 장사를 계속할  있을 거라고 하면서 형님께서 붕어빵 리어카를 마련할 테니 저에게 1 동안 붕어빵 장사를   있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흔쾌히 승낙하고, 제가 장사하는 1 동안의 수입은 제가 갖는 것으로 하여 독서실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독서실 앞은 전북대학교 병원, 병원 옆 쪽에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이 있고, 인근에 주택가가 있어 유동인구 참 많아 붕어빵 장사하기 딱 좋은 곳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지원이라는 여자아이입니다. 거의 매일 유치원이 끝나면 엄마 손을 붙들고 와서 붕어빵과 어묵을 먹고 갑니다. 지금 쯤 지원이는 어른이 되어 저라는 붕어빵 청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간호대학 학생들도 오가며 붕어빵과 어묵을 사 먹습니다. 자주 오던 여학생들을 보면서 속으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천 원에 붕어빵 4개를 팔았던 것 같은데, 한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생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동전을 주섬주섬 꺼내 보이면서 몇 백원이 모자라는데, 붕어빵 천 원어치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하면서 밑지는 장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되고 난 후, 어느 때인가 아침 출근 전에 KBS1에서 하던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잠시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은 전주 예수병원에서 근무하는 부부 의사 이야기였습니다. 남편 의사는 낯익은 얼굴이었는데, 어디에서 보았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그 얼굴이 맴돌다가 제가 몇 백 원 밑지고 붕어빵을 팔았던 그 학생 기억이 나자, 그 친구였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오면서 흐뭇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2019  연휴 기간에 10여년 만에 우연히 병철 형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붕어빵을 굽던 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즐거웠던 추억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양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