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문화원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남미 문화원에
햇살 가득한 봄날 입구에 들어섰다.
멕시코 대사로 은퇴한 대사님 부부의 수집품들이
중남미 문화원의 기원이 되었다.
3대 독자를 고등학생 시절 만난 두 분은 올해로 94세, 92세
70여 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지금도
부부의 연을 이어오고 계신다.
어린 시절 만나 평생 사랑하면서 지금은 인생의 뒤안길에서
두 분은 어떤 느낌으로 서로에게 다가올까...
만남과 헤어짐이 흔해진 요즘시대에 어떤 마음으로
기나긴 세월을 두 분이 보내셨을까 궁금해진다.
두 분의 열정과 사랑이 이루어낸 멋진 정원이다.
여전히 6000여 평 정원의 낙엽들을 직접 주우신다.
나무와 조각상들 돌멩이 하나까지 그분의 손길이 보인다. 자연에 사랑을 듬뿍 쏟는 모습이
많이 존경스러워진다.
꼿꼿한 자세가 젊은이들보다 허리와 걸음걸이에
여전히 힘이 넘치신다.
문화원 정원에 가면 비영리 문화재단을 만들어 기부하고 지금도 화단에 쓰레기와 낙엽을 주우시느라
손에 흙이 묻어 있는 아름다운 그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두 분이 거주하시는 개인적인 공간을 공개해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정원에서
아침을 맞이하시는 분이
마냥 부러워진다.
중남미 미술관
박물관
경기도지정 테마박물관 제96-1호
중남미문화원박물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2-1
중남비 문화원박물관은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멕시코 대사 등
중남미에서 30여 년간 외교관 생활을 한 이복형 선생이 우리나라와 중남미 문화의 교류와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하였으며 부인 홍갑포 여사는 선생의
이러한 취지를 부각하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인류의 꿈을 공유하며 그 꿈을 실현시키는 전당으로 삼고자 병설박물관 건립에 기여하였다.
이곳에는 중남미 각국의 가면, 토기, 폭기, 석가 및 민속공예중 등 삼천여 점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미술관, 영상세미나 실, 기념품점, 휴게실, 주차장 등 부대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중남미 국가의 원주민들은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었던 약 40,000여 년 전 빙하시대에 베링해협을 통해 아시아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것으로 전해지며 잉카(lnca) 문명, 아스테카(Azteca) 문명, 마야(Maya) 문명 등
세계 인류문화에 찬란한 꽃을 피웠다.
올역문화(OLIEC)
중앙아메리카의 고대문화로 헌재의 멕시코만 연안에 위치한 베라크루스 (VERACRUZ) 남부와 타바스코(TABASCO) 지역을 중심으로 라벨태(LA VENTA)
산로렌소(SANLORENZO) 트레스사포테스
(TRES ZAPOTES) 등에서 발전했다.
올멕의 이러한 영향은 강력한 제국과 정교한 교역망 종교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중앙아메리카 토착 종교와 성상은 올액에서 기원했으며 올멕 예술은 거대한 기념조각에서 작은 비취 조각품에까지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예술 작품에 주로 표현된 주제는 재규에 JAGUAR의 얼굴이나 인간의 형상을 한 재규어이다.
타이노족(Tano)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 섬에 살던 아라와크 인디언이다.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의 동단에서 살았으나 스페인 정복 후 100년 만에 멸족되었다. 스페인인과 접촉하기 시작할 무렵에는 카사바가 주식이었으나
스페인 정복 이후 옥수수를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채집하게 되었다. 새, 도마뱀등 작은 동물을 사냥해서 식량으로 삼았고, 개를 가축으로 기르는 이외에 앵무새를 이용하여 야생조류를 사냥거리 이내로 유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고기와 조개류도 중요한 식량의 하나였다. 가족별로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3,000명 정도의 주민이 한 부락을 이루기도 했으며,
가옥은 통나무와 기둥으로 지은 초가집이었다.
남자들은 보통 벗고 다녔고, 여자들은 망이나 풀로 만든 앞치마를 걸치고 생활했다. 남녀 모두 특별한 경우에는 몸에 칠을 했으며 귀걸이. 코걸이 목걸이를 하고 다녔는데 그 가운데는 금으로 만든 것도 있었다. 따이노 족은
거의 수공예는 하지 않았지만 돌과 나무는 기술적으로 다루었다. 세습족장과 부족장들이 부족을 통치했고, 귀족. 평민 노예계급이 있었다.
잉카문명(INCA AD20 ADG32)
페루 남부고원에 위치한 쿠스코(CUZC)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15C-16C 초까지 안데스 일대에 대제국을 건립하고 지금의 에콰도르 북쪽 국경에서 아르헨티나
중서부와 칠레 중부의 마우레 강 유역에 이르는 전장 4000Km의 지역을 지배하였다.
잉카에는 유럽적 의미의 문자체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잉카 종교에는 기도. 복잡한 의식, 마력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대상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믿음. 자연숭배등이 섞여 있었으며, 태양 숭배 속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사제의 명칭은 점술가. 마법사, 고해자, 치료자등 맡은 기능에 따라 정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쿠스코의 사제장은 귀족 출신으로 결혼이 허락되었고, 모든 신전과 사제들위에서 완벽한 권위를 누렸다.
전쟁 결과에 대한 예측, 죄인의 추적등에쓰였다.
중요한 의식에는 동물이나 인간이 제물로 바쳐졌다.
잉카(NCA)는 태양(INT)의 아들을 뜻한다.
멕시코 가면 메소아메리카 지역 인디오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신을 상징하는 가면 문화의 전통이 고대신앙 속에 제도화되어 있었다.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과 더불어 원시
적인 가면의 역할은 줄어들고 스페인과 인디오 혼합 문화를 대변하는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가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지방의 외진 인디오 마을에는
전통 가면 문화가 간직되고 있다.
넓은 영토에 흩어져 생존하는 인디오 민족의 축제나 장례, 종교의식에서 기쁨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표현을 춤과 함께 의식이나 행렬에 표현하기 위해 가면을 사용했고, 인물 재현이나 인간의 탐욕을 표현하기 위한 가면도 있다.
각 지방의 독특한 의상, 춤, 음악, 무대장치 등에 따라 소재와 형태가 한층 다양하다.
식민화 이후 가톨릭의 복음전도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종교적 연극을 제작하고 상연하기 위해,
또한 가톨릭 전례 행사, 부활절, 성탄절, 사순절 등의 행사를 통해 인디오 전통 가면 문화에 새로운 영향을 끼쳐 더욱 다양한 오늘들 날의 멕시코
가면 문화가 형성되었다.
중남미 문화원은 화장실마저 아름답다.
예전보다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눈부신 햇살아래 산책할 수 있는 멋진 조각상들의
공원과 커피와 타코를 맛볼 수 있는 예쁜 카페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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