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고흐 뮤지엄을 찾아서
다시 만난 반 고흐 뮤지엄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은 여전했다.
출구를 나오자 바구니 한가득 담긴 튤립 꽃다발들이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듯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곧바로 반 고흐 뮤지엄으로 향했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고흐 미술관은 여전히 인기 있는 명소였다. 암스테르담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뮤지엄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삼성에서 제공하는 기계로 한국말 도슨트까지 들으며 덕분에 행복한 작품 감상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고흐의 조카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이다.
끔찍하게 사랑했던 동생 태호가 아이를 낳자
태호는 아들의 이름을 형 이름을 따라지었다고 한다.
그런 조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림이
꽃피는 아몬드 나무이다.
점점 그림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이 그림은
네덜란드에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시간. 그의 표현력 있고 다채로운 작업과 다사다난한 삶은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준다.
반 고흐가 그린 수백 점의 그림과 그림들은
여러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여전히
우리의 시각 문화 속에서 살아 있다.
다양한 컬렉션과 함께 약 200점의 그림,
500점 이상의 그림, 그리고 반 고흐 미술관은
그의 거의 모든 편지를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은 반 고흐와 함께
여행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을 개선하고 예술에 깊이 몰두하는 것에 대해
그의 시대의 발전. 그는 말보다 뛰어난 예술가였으며
새로운 종류의 예술을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직접적이고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가장 심오한 실존적 감정을 표현했다.
몇 년 동안 예술가로 일한 후
네덜란드의 여러 장소(1880-1883), 반 고흐는
그의 아버지가 있던 시골 마을 누엔에 정착했다.
그곳에서부터 그는 테오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가지 소망은 문명세계보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심오한 그의 작품생활을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수확하는 감자’는 빈농들의 노동과 삶을 그린 작품이며. 고흐가 주로 어두운 색조와 거친 붓놀림을 통해 농민들의 소박하면서도 힘든 삶을 담아냈다.
이 작품은 고흐의 초기 농민 시리즈 중 하나로, 인간의 노동과 자연을 깊이 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반 고흐는 농민 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으로 남겼다.
이곳 미술관은 아이들도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멋진 교육 장소였다.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 작품 앞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고흐에게 노랑 해바라기는 햇빛, 생명, 희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직접 작가의 고향에서 원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크나큰 감동이자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