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ㅡ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민들의 관점ㅡ
시민들에게는 어쩌면 밉상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름의 죄를 짓고 법정에 섰음에도 한결같이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루고 늘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 왔다며 자신은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내린 사람이라는 말을
자신의 입으로 말한다.
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항변을
하고 있는 게 전혀 아닙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즉 여러분이 나에게 유죄표를 던짐으로 해서 신이
여러분에게 준 선물에 대해 뭔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려고 항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날 죽인다면,
이런 유의 다른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내가 바로 신이 이 나라에 선물로 주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부터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이 숱한 세월 동안 나 자신의 일들은
일절 돌보지 않았고 집안일들을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하고도 견딘 반면,
여러분의 일은 줄곧 해 왔다는 것,
이것은 인간에게 속한 일 같지 않다는 겁니다.
ㅡ소크라테스를 따르고 스승으로 모셨던 플라톤의 관점 ㅡ
당연히 그들은 평소에 그를 존경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의 사상과 가치관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의
이상과 불합함을 꼬집는 스승의 발언이
또 하나의 배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ㅡ 현시대의 제3의 관점이다ㅡ
문맥과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나.
민주정의 붕괴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재판대에 세운 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모두 염두에 둔 '내'가 보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토론과 토의라는 확실
한 민주정 방식을 통해 철저한 검증을 하고 이를 전파하는
소크라테스의 행태는 어쩌면 당시 모든 이들에게
눈에 가시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재물을 받지도 않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에게마저 확실한 잣대를 들이대는
소크라테스는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죄상으로 피소되었는
데 중요한 이유는 무지에 대한 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과 같으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무지를 깨우치는 일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으로 생각하여 엄격한 대화를
통해서 사람의 억단( 근거 없는 판단)의
꿈을 깨뜨려 나갔다.
인간은 신의 지에 대해서는 무지와 다름없으므로,
진지를 사랑하고 정신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신체나 재산보다 먼저 이 일에 마음을 써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지를 사랑하고 구하는 것,
이것이 야말로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가장 큰 열쇠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를 철학(Philosophy: 지혜에 대한 사랑)의 아버지라 부른다.
지혜는 일상생활에서의 실용하는 지식이 아닌
인간 자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뜻한다.
이를테면 세계관, 인생관, 기치관이 포함된다.
결국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소크라테스는 시종일관 두려움 없이
자기의 소신을 말하였다.
"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왔다.
" 나는 죽기 위하여,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그 어느 것이 더 행복한가에 대해서는
신 이외에 아는 자는 없다."
이것이 이 글의 마지막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