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의 독서 -사피엔스 Sapiens 2

2부 농업혁명

by 온새미로


제2부

농업혁명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밀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삶을 더 비참한 생활과 교환하도록 설득했을까?


여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은 그 DNA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된다. 만일 더 이상의 DNA 복사본이

남아 있지 않다면 종은 멸종한 것이다.


돈이 없는 회사가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한종이 많은 DNA 복사본을 뽐낸다면

그것은 성공이며 그 종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밀 거래'의 부담은 점점 더 커졌다.

아이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어른들은 땀에 젖은 빵을 먹었다. 기원전 8500년 여리고의 평범한 사람은 기원전

9500년이나 기원전 13000년의 사람에 비해 더욱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세대는 전 세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살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여기저기 작은 개선이 일어

을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오류를 범했을까?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빗나갔을 때 왜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재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 시대의 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이메일 계정 만들기를 거부하는 신기술 반대론자도 드문드문 있기는 하다. 마치 수천 년 전 농경을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사치품 함정을 비켜갔던 일부 인간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농업혁명은 해당 지역의 모든 무리의

동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치품의 함정 이야기에는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일부러 농업혁명을 구상하거나 인간을 곡물 재배에 의존하게 만들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배를 좀 채우고 약간의 안전을 얻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일련의 사소한 결정이 거듭해서

쌓여,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위의 설명에 따르면 농업혁명은 오산이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다. 역사는 이것보다 훨씬 더 바보 같은 오산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전환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에게 다른 열망이 있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삶을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양치기가 아닌 양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다수의 가축화된 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양이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들의 진화적 '성공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좁은 상자 안에 갇혀서 살을 찌우다가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되어 짧은 삶을 마감하는 송아지보다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한 야생 코뿔소가 더 만족해할 것이다.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송아지의 종이 수적으로 성공한 것은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밀이나 옥수수 같은 식물의 이야기를 조사할 때는 순수한 진화적 관점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

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유명한 신화

1. 기원전 1776년경의 함무라비 법전


기원전 1776년 바넬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

1백만 명이 넘는 국민을 거느린 바빌로니아 제국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을 것이다.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대부분을 다스렸는데 오늘날 이라크의 대부분과 시리아, 이란의 일부가 포함된다. 오늘날 가장 유한 바빌론의 왕은 함무라비다. 그의 명성은 그의 이름을 딴 함무라비 법전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법조문과 판례 모음집으로서, 그

목표는 함무라비를 정의로운 왕의 역할모델로 제시하는 데 있었다. 또한 바빌로니아 제국 내에 좀 더 통일된 법체계를 확립하는 토대 역할을 하며, 후손들에게 정의란 무엇이며 정의로운 왕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후손들은 그 가르침에 귀 기울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식 엘리트와 관료 엘리트는 그 경전을 추앙했고, 심지어 함무라비가 죽고 그의 제국이 영락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견습 필경사들은 계해서 이것을 베껴 썼다.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론의 사회적 질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원칙은 신들이 읊어준 것이라고 단언한다.

계급제도의 중요성은 엄청나다.

법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개의 성별과

세 개의 계급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뉜다.

사람은 성별과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다.

평민 여성의 목숨 값은 은 30세겔이고,

노예 여성은 20세겔이다.

이에 비해 평민 남성의 눈은 60세겔의 가치가 있다.

이 법전은 또한 가족 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규정한다.



2.1776년의 미국 독립 선언문


미국 독립선언문의 가장 유명한 구절을 생물학

어로 한번 번역해 보자.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물학에 파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다. 진화했다.

또한 '평등'하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평등사상은 창조사상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미국인들은 평등사상을 기독교 신앙에서 얻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이 창조했으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신앙 말이다.



볼테르

볼테르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막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함무라비는 자신의 위계질서 원리에 대해 똑같은 말을

을 것이고,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인권에 대해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가 없다.




냉소주의학파를 창시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살았다. 한 번은 그가 햇볕을 쬐며 쉬고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왔다.

대왕은 뭔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냉소주의자는 막강한 정복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소.

조금만 옆으로 비켜서 주시오

당신이 햇볕을 막고 있어요."


냉소주의자들이 제국을 세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상상의 질서가 오로지 많은 사람이-특히 엘리트와 보안대가 진정으로 이것을 신봉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도 같다. 만일 그 주창자 대다수가 인과 예와 효*를

신봉하지 않았다면,

유교는 2천 년 넘게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과 의원 대다수가 인권을 신봉하지 않았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250년간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투자자와 은행가 다수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현대 경제 시스템은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ㅡ그와 그녀 ㅡ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주인은 아버지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남편이나

남자 형제일 때도 있었다.

많은 법계는 강간을 재산권 침해로 다루었는데,

달리 말해 강간의 피해자는 강간당한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이란 뜻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적 제재의 내용은 소유권 이전이었다. 강간법은 피해지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 신부 값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지불과 동시에 여자는 강간범의 소유물이 되었다. 성경의 규정은 이렇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그녀

붙잡아서 동침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남자는 그 젊은 여성의 아버지에게 은 5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신명기 22:28~29)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것이 타당한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어느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전혀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복잡한 거리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줍는 것은 도둑질로 취급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면 범죄가 아니었다.

사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었다. 남편이 된다는 것은 아내의 성을 완전히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었다.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잃을까 봐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그는 진짜 남자야 란 말을 듣기 위해 기꺼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심지어 목숨을 바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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