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친절에 반하다
시드니에서의 무일푼의 하루
계절은 가을로 들어섰지만 여름의 무더위에 맥을 못 추는
서울을 뒤로하고 나는 봄에 문턱에 들어선
시드니로 날아갔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시드니였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라니 그 또한 더욱 색다르다.
시드니에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직장 초년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딸과 한국에서 대학 2학년을 마친 후 휴학, 워킹홀리데이 중인 막내딸을 만나기 위해 설렘을 안고
나는 비행기를 탔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3일째,
나는 아침 일찍 혼자 집을 나섰다.
오래전부터 딸에게 가끔 맛난 밥과 간식을 사주시며 외로운 유학생활을 위로해 주시던 지인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이다.
초행길이라 혼자 트레인을 타기 위해 한참을 걷다가
지나가던 사우디 여인에게 다시 한번 기차역이 어디인지
확인차 묻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차 하며 나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 정신머리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온 게 아닌가.
정신 잘 챙기고 다니라는 딸아이의 잔소리가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한국도 아닌 낯선 타국에서 혼자 무일푼이라니...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자니 약속시간이 늦을 거 같아 포기하고
길을 묻던 사우디 여인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사정을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고 30달러만 빌려주면
내일 아침 꼭 갚겠다고 애원해 보았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출근길에 우연히 만나 길을 묻던 동양인 아줌마를
언제 봤다고 선뜻 돈을 빌려주겠는가.
나라도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내 상황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 아니던가.
그 여인은 연신 현금이 없어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 여인이 이해는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차 타는 곳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갑자기 사우디 여인이 내가 입력해 준 번호로 전화를 했다.
길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건너와서 타야 목적지에
갈 수 있다며 친절히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마터면 너무 경황이 없어 기차를 거꾸로 타고 반대편으로 갈뻔했다. 후다닥 육교를 건너가서 일단 기차를 타고나서
생각하기로 했다.
무임승차는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니 경비원이
제복을 입고 게이트 입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최대한 선량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사정이야기를 했다.
다시 티켓값을 갚으러 오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세상 사람 좋은 웃음으로 괜찮다며 흔쾌히
게이트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나 친절한 그가 낯선 동양인에게 보낸 미소는
그동안의 백호주의가 강했던 호주인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어줄 만큼 나에겐 강렬했다.
나는 그에게 연신 땡큐 쏘 머치를 날리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래도 돈 걱정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인식당이니 사장님께 계좌이체라도 하고 돈을 빌려볼까
별별 궁리를 하며 식당에 도착했다.
지인은 미리 오셔서 샐러드를 시켜놓으셨다며
메뉴판을 내게 내밀었다.
지인은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금요일에
간단한 수술을 먼저 하신다며 근황을 이야기하셨다.
심장과 신장이 안 좋아 신장 이식수술을 해야 하지만 몇 년 기다려야 한다며 식사가 나오자 갑자기 익숙하게 주삿바늘로 자신의 배를 찌르며 인슐린주사를
스스로 놓는 게 아닌가.
식사 전에 항상 주사를 맞아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본모습에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인간에게 먹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
먹고 싶은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음에 한없이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남들은 평범하게 먹는 음식도 못 드시고
식사 전에 스스로에게 주삿바늘을 찔러야 하는 일상이 얼마나 삶의 질을 많이 떨어뜨렸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과 몸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겁이 많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아직은 너무 젊고 할 일이 많은데 이 좋은 나라에 사시면서 왜 이런 나쁜 병에 걸리셨을까.
무어라 위로의 말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을 앞두고 나와 식사를 위해 시간을 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무일푼인 나는 너무 죄송하고도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옆 카페로 이동해 카푸치노와 디저트를 주문하셨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지만 마치 어린 시절
동네친구처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을 즐겁게 보냈다.
아프고 나니 많이 것들이 보이고 후회된다고 하셨다.
생각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시는 현안이 더욱 생기 신듯했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충분히 만끽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아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후회 없이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새기며 생각해 본다.
우리는 수술 후에 컨디션 회복되면 아이들과 다시 한번 식사하기로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무일푼 내 사정을 알고 돌아갈 차비도 없지 않냐며
백 불짜리 지폐를 나에게 건네며 웃으셨다.
나는 식사에 커피 디저트까지 얻어먹고도 염치없지만
백 달러를 받아 들었다.
꼭 갚겠다는 말에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시면서 가셨다.
수술이 잘 되어 아이들과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분의 빠른 쾌유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무일푼에서 백 불짜리 지폐를 받고 나니 아침과는 정반대로 세상 부러울 거 없는 부자가 된듯했다.
참 사람 간사하고 행복이 별거 없다.
퇴근하는 딸을 만나기 위해 다시 메트로를 탔다.
이곳에서는 지하철로 딸의 회사를 한 번에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교통카드를 사기 위해 기계 앞에서 한동안 씨름했지만
기계는 잔돈이 없는지 연신 백 불짜리 지폐를 자꾸만
반복해 토해냈다.
그러자 게이트 앞 경비원이 그냥 들어가라며 다시 문을
열어 주신다. 그리고 딸아이 회사 시내에 도착하자 나는 다시 벨을 누르고 사정이야기를 하자 다시 장애인 게이트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웬 횡재인가 싶다.
시드니가 이렇게 친절한 도시였나 생각하며
많이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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