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기억하는 것은 몸 어딘가에 남은 지독한 그리움의 기록이다.
날이 확 따뜻해졌다.
취리히 산자락 밑에서도 겨울 실내복을 입으면 더운 밤이다.
풀린 건 날씨인데, 입맛도 덩달아 풀린 건지 밤만 되면 갖가지 한국 야식 메뉴가 줄줄이 떠오른다.
특히 오늘처럼 저녁 식사가 일찍 끝나버려 개운, 서운한 밤 10시 반엔 매콤한 양념 치킨에 시원한 생맥 한 잔, 그게 아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에 순대 몇 점 집어 먹고 싶은 생각이 찜통 속 순대의 김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문제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엔 그게 없다는 것.
이제쯤엔 슬그머니 올라오는 한국식 야식 메뉴는 적당히 포기하고 살만도 하건만, 올라오는 식욕 앞에서 현실 감각은 마비가 되어버리며 이렇게 이국 땅을 돌며 늘 야식에 목마른 내 처지가 짜증 날 때가 있다.
외국에 있다가 어쩌다 한국에 한 번 들어가면 친정 식구들부터 시작해 만나려고 약속 잡는 사람마다 꼭 묻는다.
“뭐 먹고 싶어?”
희한하게도 이 질문은 빠지지 않는다.
“회 먹을래? 거기 회 없지?”
“갈비 먹을래? 양념갈비 잘하는데 아는데… 얘, 요즘 외국에서도 ‘갈비’는 무, 한국 바베큐라고 부르며 인기라며?…”
“뷔페 갈래? 여기 점심 뷔페 잘 나오는데…”
아니, 아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그렇게 대단한 음식이 아니다.
짜장면, 짬뽕, 떡볶이, 길거리 오뎅, 순대 그리고 치킨…
한국에선 너무 흔해서 굳이 먹고 싶다고 말하지도 않았던 것들.
집 앞에 몇 걸음만 나가면 있고 배달 앱을 켜면 30분 안에 도착하던 것들.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이 가장 그립다.
매번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말하지만 가장 내 노스탤지어적인 입맛에 협조를 해 주니 않는 사람들은 친정 식구들이다.
떡볶이를 사 먹고 들어오면 “쟤는... 그 영양가도 없는, 그런 걸 먹고서 끼니를 거른다”라고 '쯧쯔...'거리시질 않나, 칼국수 먹고 싶다는 사람을 굳이 고기 재시고 구워서 밥 한 공기 가득 차게 푸셔서 다 먹게 하신다.
한 10여 년 전인가?.
특별한 촬영이 잡혀 있어서 평생 안 하던 다이어트를 마친 끝이라 식욕이 폭발하던 시점에 한국에 들어갔었다.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한테
“아, 이번엔 나한테 먹는 거 정말 강요하지 마. 나 이번엔 죽어도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돌아갈 거아.
짜장면, 짬뽕, 떡볶이, 오뎅, 순대 그리고 치킨, 칼국수, 마약 김밥, 쫄며 ㄴ….”
나름 다른 음식 끼어들 틈 없도록 줄줄 읊조리는데, 갑자기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얘!, 너… 임신했니?...” 하시는데…
으하하!!! 내가 몬살아…
함부로 그리워도 못 한다.
인간이란 의외로 적응의 동물이다.
당장 한국 것 하나 없이는 못 살 것 같지만,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금방 적응된다.
언어는 배운다.
행정 시스템도 익숙해진다.
그 나라의 법과 규칙은 오히려 더 분명하다.
살아야 하니까 몸은 빠르게 배운다.
그런데 입맛은 다르다.
입맛은 끝까지 버틴다.
대표적인 예로, ‘푸른 잎 샐러드’를 아예 '전식' 코스로 박아 넣고 사는 나라이니만큼 야채, 채소만은 부족함 없이 먹을 줄 알았다.
웬걸, 외국엔 깻잎이 없다.
한국에선 쌈채소 중 가장 흔하다 못해 밑반찬으로 먹던 깻잎이 여기서는 아무리 찾아도 비스무리한 맛을 가진 풀떼기도 없다.
상추는 있고 루콜라는 넘쳐나고 바질은 종류별로 있는데 깻잎이 없다.
그게 그렇게 그리웠다.
한국에서 씨를 가져와 심어본 적도 있다.
집에서 가져온 씨를 심었다는 친구네 화분에선 깻잎이 무럭무럭 자라는데 나는 싹조차 올라오지 않았다. (먹는 것에 연루된 모든 것에 -심지어 '깻잎 기르기'조차- 나는 잼병이다)
며칠을 빈 화분만 바라보다가 결국 흙을 엎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알았다.
입맛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억이라는 걸.
자카르타에서 거주하던 시절, 꽤 큰 쇼핑몰에 한국 ‘교촌치킨’이 크게 들어왔었다.
처음 교촌 치킨을 먹었을 때, 남편과 나는 동시에 말했다.
“이건 분명 안에 마약을 넣었어. 아님, 이런 맛이 나올 수가 없어”
한동안 매일 쇼핑몰 '교촌치킨'이 우리의 외식 장소였다.
아니,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 위층에 ‘설빙’까지 입점을 한 것이었다.
우리의 주말 식사 코스는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매번 교촌 치킨에서 오리지널(간장 양념) 윙 + 핫 윙 + 생맥을 거하게 먹고 설빙에서 인절미 빙수를 디저트로 먹으며 남편에게 여러 번 다짐에 다짐을 받았었다.
“여기가 우리의 살 곳이야. 이제, 절대 나라는 안 옮기는 거야. 알았지?”
(글을 쓰는 이 순간, 눈물 나게 교촌치킨이 그립다… )
철석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남편은 야속하게도 그 약속을 또 저버렸지만, 인간의 맹세란 설빙의 인절미 가루보다 가벼운 것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사람은
국적을 바꾸고
언어를 배우고
생활 방식을 익힌다.
하지만 혀가 기억하는 것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한국에 있으면 바게트가 그립고
여기 있으면 떡볶이가 그립다.
입맛은 늘 지금 없는 쪽을 향한다.
오늘은 저녁 내내
떡볶이의 환영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건 배고픔이 아니라
그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에 가깝다.
떡볶이가, 아니 양념 치킨이, 아니 순대가 그리운 밤…
From Züri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