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긴 인생, 갑작스런 노년

준비되지 않은 장수, 예고 없이 당도한 노년 - 그 서늘한 시간들

by 온 세상이 내 편


노년은 갑자기 온다.
생각처럼 서서히 오지 않는다.
- 에밀리 디킨슨 -


23기 첫 필독서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을 읽으며 63페이지에서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어!”소리와 함께 잠시 멍했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시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을 모시고 돌아와 카페와 브런치에 기록했던 내 단상의 핵심이 바로 이 문장 하나에 농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말대로 노년은 계절이 바뀌듯 서서히 스며드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문턱을 넘어선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노년의 갑작스러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갑작스러운 노년 이후에도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마주한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며' 버텨야 하는 걸까.


지난 2월,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마주했던 시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 풍경이 다시금 서늘하게 겹쳐온다.


멈춰버린 시간의 식탁

시어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을 맞아 파리로 갔었다.

어머님 여든 되시던 생신 때,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어머님 친구분들까지 모시고 잔치하신 후로는 바깥에서 생신을 기념하긴 십 년 만이다. 모임과 파티를 그렇게도 좋아하셨던 분이 연세가 들어가시면서 점점 더 생신상 받기를 싫어하신다.

자식들의 온갖 권유를 '나이 드는 거 기념하기 싫다'는 짧은 말씀으로 물리쳐 오신 끝에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가족들이 한 테이블에 모였지만, 주인공인 어머님의 얼굴엔 이렇다 할 기쁨도, 활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무표정한 고요함이 레스토랑의 정적보다 더 크게 다가와 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이토록 고집스럽게 생의 의욕을 내려놓고 계신 이분은 본래 어떤 분이셨던가.


나의 시어머니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으셨던,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엘리트셨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당당히 퇴직하셨으나, 그 영예로운 시절로부터도 어느덧 서른다섯 해가 흘러갔다.


퇴직 후에는 고고 미술사를 공부해 보고 싶다고 하셨고,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 평생 교육관에 신청을 하셔서 수업을 받기 시작하셨었다.

하지만 그 무렵 시아버님(어머님의 남편)께서 쓰러지시면서 투병이 시작되었다. 병원에서는 오래 못 사실 거라고 예고했었고, 어머님은 당신이 꿈꾸던 시간을 기꺼이 접어둔 채 간병에만 전념하셨다.

그렇게 어머님의 시간은 아버님을 지키기 위해 무기한 유예되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아버님이 다시 일어나셨고, 정상인과 다름없이 3년을 더 사셨다.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신 듯했던 아버님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뒤, 어머니는 오랜 시간 깊은 우울증을 앓으셨다. 증세에 따라 약을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했지만, 끝내 약을 끊지는 못한 채 7년 정도를 그렇게 '마음의 감옥'에서 지내셨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마음이 먼저 닫혀 있던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쉰다섯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어머님 시절엔 여성의 정년퇴직은 55세였다-

지금 아흔이시니, 퇴직 이후의 시간이 서른다섯 해다.


서른다섯 해면, 다시 한번 직업 인생을 시작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느리게라도, 중간에 쉬어 가면서라도 스무 해, 스물다섯 해쯤은 충분히 무언가를 더 해볼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늘 ‘지금은 아닌 때’로 밀려났다.

오늘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여든이 넘어가며 어머님은 자주 넘어지신다.

최근 10년간 몇 번의 골절을 겪으신 뒤, 허리가 눈에 띄게 굽으셨고, 걷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지셨다.

시간이 먼저 끝난 게 아니라, 몸이 먼저 문을 닫아버린 것처럼 보인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조용히 닫힌다.


IMG_4582.JPG 2월을 넘기자 해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 어쩌면 인생도,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후반부가 더 길지도 모른다.


【온 세상의 짧은 생각】

-도망칠 수 없는 시간들-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길다는 가능성에는 거의 대비하지 않는다.


곧 끝날 것처럼 말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아직 한참 남았다고 가정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선택은 미뤄지고,

어떤 관심은 접힌 채로 남고,

어떤 가능성은 ‘그럴 수도 있었던 일’로만 정리된다.


인생이 짧아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길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 살아남은 시간 앞에서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 이 상태로 살아도 괜찮은지,

이 정도의 나로 몇십 년을 더 버틸 수 있는지.


인생이 길다는 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도망친 채로 오래 살아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다리지 않는 방식으로…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 앞에 멈춰 섰을 때, 내가 맞닥뜨린 건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계획이 아니라,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라는 서늘한 질문이었다.

노년은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그 거대한 시간 앞에서 내놓을 나만의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2월에 파리에서 시작된 막막한 사유는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을 통과하며 비로소 하나의 길로 수렴되었다.

이제 나의 일상은 더 이상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는 방식으로 흐르게 될 것 같다.

무언가 완벽해지기를, 혹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미뤄두었던 내 안의 욕망들을 더 이상 유예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도망친 채로 오래 사는 비극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갑작스러운 노년이 들이닥치기 전에 '지금 당장의 나'를 더 선명하게 마주하는 것뿐이다.

어떤 거창한 결심보다, 매 순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기꺼이 응답하며 사는 것.

그 작고도 치열한 응답들이 쌓여야만, 예측보다 빨리 당도할 기차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도망칠 수 없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2026년 4월 20일,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을 읽고.





오늘의 음악 : 〈Still, The Train Arrives〉

곡 By '온 세상이 내 편'

멈춰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는 뜻으로.〈Still, the Train Arrives〉 —‘여전히, 기차는 들어온다’로 지어봤다.


이 곡은 멈춰 선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젊음과 노년이 같은 플랫폼에 서 있어도 기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도착한다.

슬픔은 과장되지 않고, 시간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갈 뿐이라는 사실을 단아하고 슬픈 왈츠로 옮겨 보았다.

무언가를 잃었다기보다, 이미 지나와버린 시간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https://youtu.be/tiBayHqA35U?si=JtJoP3jQ3gSjWC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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