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손에 든 인생

작전 암호가 '고구마'였던 꺼벙이 일병의 비극, 그리고 인생의 자리 선택

by 온 세상이 내 편


얼마 전, 길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고꾸라지면서 눈앞의 거친 현무암 재질의 돌벼락에 그대로 얼굴을 박았다.

코뼈 안 부러진 것만도 다행으로 여겼지만 얼굴을 처참하게 갈았다. 몇 바늘 꿰맨 상태다.

얼굴 상처에 신경 쓰느라 몰랐지만, 넘어질 때 충격으로 무릎도 제대로 못 구부리다 보니 밖을 오래 걷는 것도, 몸을 쓰는 일도, 야외 달리기 등도 전부 보류다.

사람이 이렇게 한 번 멈춰 서게 되면, 갑자기 선택지가 줄어든다. 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엉망이 된 얼굴과 무릎을 이끌고 어떻게든 일상을 재세팅해 보려 시장에 갔었다.

움직이지 않는 지금 내 몸 상태에서 그나마 덜 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걸 찾으러 갔고, 자연스럽게 손이 간 게 고구마였다.

탄수화물이긴 한데, 왠지 덜 나쁜 느낌.

그렇게 고구마를 고르다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하나 떠올라서 ‘피식’ 웃었다.



‘아’ 발음을 못 하는 꺼벙이 일병

학교 다닐 때 유명했던 꺼벙이의 군대 이야기다.


'아’ 발음을 제대로 못해 모든 '아'를 '이'로 발음하는 꺼벙이가 군복무를 위해 입대했다.

그리고 어느 날, 초소 교대를 하며 암호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날의 작전 암호는 하필이면 ‘고구마’였다.


암호를 전달받은 꺼벙이는 그날 내내 연습을 했다.

고. 구. 마.

입 모양을 몇 번이고 굴려 보고, 속으로 수십 번을 되뇌었다. 될 것 같다가도, 막상 소리를 내면 자꾸만 어긋났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초소로 향하는 길 내내 중얼거렸을 것이다.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마ㅏㅏㅏ…


그리고 마침내 초소 앞.


“암호를 말하라.”

“고구…ㅁ…ㅁ…ㅁ...이...ㅏ…”


(갸웃) 다시 기회를 준다.

“작전 암호를 다시 말하라.”

“고. 구. ㅁ…이…”


총을 고쳐 든 병사의 마지막 경고가 떨어진다.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틀리면 방아쇠 당긴다. 사살이다. 하나, 둘, ㅅ ㅔ..”


꺼벙이는 급히 손을 내저으며 끝내

“고. 구…ㅁ...미!…”

를 말했고, 총성이 울린다.


결국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

“씨… 씨빌… 고구미리니끼…”


웃기려고 퍼진 이야기고, 실제로 그랬을 리는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이 이야기는 내게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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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손에 든 인생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손에 고구마 하나쯤을 들고 살아간다.


아무리 연습해도 잘 안 되는 것.

노력은 하는데 남들만큼 안 늘어나는 것.

애써 붙들고 있지만 늘 어딘가 어색한 자리.

누군가에게는 요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관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말투, 성격, 체력, 감정 조절일 수도 있다.


문제는 고구마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그 고구마를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자리에 계속 서 있으려는 태도다.


모든 약점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약점은 애써 이겨내려 할수록 더 크게 다친다.

안 되는 걸 끝내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안 되는 걸 알아보고, 그걸 요구하지 않는 자리로 이동할 줄 아는 사람.

그게 오래가는 사람이다.


요리를 잘 못 하면, 셰프의 자리에 서지 않으면 된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으면, 같은 속도로 달릴 필요는 없다.

인생은 시험이 아니라 자리 선택의 연속이니까.


‘고구마’를 말하지 않는 선택지

이 꺼벙이의 '고구마 암호 이야기'가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건 꺼벙이는 게을렀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습을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분명 노력했다.

자기 약점을 알고 있었고, 고치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안 됐다. 끝내 안 되는 건, 정말 안 되는 게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구마’를 끝내 못 말해서 죽는 건 너무 잔인한 결말 아닌가.

그럼 다른 길은 없었을까.

정말 ‘고구마’를 말하지 않고는 그 자리를 통과할 방법이 없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꺼벙이가 실패한 건 발음이 아니라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고구마를 말해야 하는 초소에 계속 서 있었던 것.

보직을 바꾸거나, 발음을 요구하지 않는 역할로 옮기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 자리에 서지 않는 선택은 정말 불가능했을까.

물론 군대라는 구조 안에서 쉽지 않았겠지만, 이 이야기가 농담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 되는 걸 끝까지 해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대개 이렇게 말한다.

“좀 더 노력하면 되겠지.”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이번엔 버텨보자.”


물론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문제는,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여길 때다.

안 되는 걸 붙잡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용기가 아니라 소모다.


인생에서는 종종, “끝까지 해내라”는 말이 미덕처럼 들린다.

포기하지 말고, 버티고, 증명하라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버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선택이 있다.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필요가 있는지 묻는 일.



【오늘의 단상】

- 버티지 않는 용기 -


사람은 누구나

손에 고구마 하나쯤을 쥐고 산다.


예전의 나는

못 말하는 걸 끝까지 붙들고 서 있는 쪽이었다.

언젠가는 되겠지,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지겠지,

그렇게 자리를 떠나지 않는 걸

성실함이라고 착각했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더 잘 말하려 애쓰기보다

애초에 그 말을 요구하지 않는 쪽을 고른다.


잘하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덜 다치고 오래가는 쪽이

이제는 더 중요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끝내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조용히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배운다.


그리고, 그건 도망이 아니라

나를 오래 데리고 가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고구마를 관두려다, 고구마를 고른 날

From Par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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