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구성요소를 기준으로 학습자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원인을 찾아본다
나는 학생들이 움직이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교수는 힘빠지고 학생은 숨막히는 수업을 더 이상 하고싶지는 않았다.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 혹은 실습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교수가 PPT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설명 자료는 구글클래스룸에도 올라가 있다.
학생들이 모형을 만들면, 교수는 학생들이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모형을 살펴본다. 엉뚱하게 만드는 학생에게는 그림을 그려가며 다시 설명해준다.
어떤 학생은 혼자 뚝 떨어져 앉아 멍하니 있다. 찾아가서 혹시 어려운 점이 있는지 물어보고, 웹에 올려놓은 설명 자료를 일단 읽어보라고 한 뒤 다시 확인하러 간다.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지난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늦게라도 꼭 제출하라고 독려한다.
지난주에 결석해서 도면을 못 그린 학생에게는 PC실을 열어준다. 수시로 드나들며 질문도 받고 잡담도 나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핀잔도 준다.
어디선가 점심 메뉴를 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10분 넘게 남았는데 수업 분위기가 산만해진다.
수업에는 교육 목표, 교육 내용, 교육 방법, 교수자, 학습자, 교육 환경, 평가라는 7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앞에서 떠올렸던 교실의 모습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생들이 무기력하고 소극적이 되는 원인을 이 '수업의 구성 요소'라는 틀에 맞춰 살펴보고자 한다.
수업 내용이나 교과목이 내가 장래에 하고 싶은 일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 나에게는 수업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과학이나 수학 같은 과목을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
영화관이나 클래식 공연장에서 재미가 없어서 졸음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수업 내용이 학습자의 개인적 목표나 관심사와 거리가 멀거나, 학습자의 사전 지식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일 때 학습 동기는 떨어진다. 내용이 너무 쉬운 경우도 마찬가지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새롭게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학습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그려라', '만들어라', '풀어라'라고만 하신다.
교수님이 PPT 화면을 거의 읽기만 하신다.
참고 자료를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하는 수업이 있다. 학생들 중에는 강의를 감상하러 온 듯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학생들에게 손발이라도 움직이라고, 즉 필기라도 하라고 말한다. 교수자가 한 가지 방식만 사용해서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는 학습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또한, 어려운 참고 자료를 제시하거나 구체적인 설명 없이 '일단 그려 봐라', '만들어 봐라' 하는 식의 수업은 학습자에게 부담을 주며 수동적인 상태로 몰아간다.
과제를 제출했는데 교수님이 확인했는지 알 수 없다
아무 설명없이 과제를 그냥 수정하라고만 하신다.
중간고사를 쳤는데 몇 점이나 나왔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별점을 매기고, 블로그에는 음식점에 대한 리뷰가 달려 있다. 식당 주인은 이런 피드백을 통해 위안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개선할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피드백은 학습자가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게 하는 중요한 지표다.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학습자는 자신의 학습 활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하고 막막할 것이다. 학기 말의 강의 평가는 학습자가 교수자에게 주는 피드백이다. 수업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이므로 피드백도 상호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주관식 시험 문제에서 친구와 거의 같은 내용의 답을 적었는데, 나는 3점이고 친구는 5점이다.
기말고사에서 답을 거의 작성하지 못했는데, A 학점이 나와서 나도 의아했다.
이번 과제는 제출만 하면 10점 만점에 7점을 기본 점수로 받는다. 대충 내자.
평가 결과가 학습자의 노력이나 성취 수준을 공정하게 반영하지 못하거나 평가의 일관성이 없다고 느껴질 때, 학습자는 평가에 대한 신뢰를 잃고 노력을 멈춘다. 예를 들어, 나름대로 정말 애썼음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과제를 낸 친구보다 점수가 낮거나, 과제를 안 냈는데도 좋은 학점이 나오는 경우다. 이렇게 노력과 결과가 그다지 연관성이 없다고 인식하는 순간, 학습자는 '어차피 해도 안 된다' 또는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성실한 학습 참여보다는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
컴퓨터 속도가 너무 느려서 PC방에 가서 과제를 할 때가 많다.
수업 마치고 늦게까지 과제를 하고 싶은데, 6시만 되면 나가라고 한다.
4인 1조로 조리 실습을 하는데 화구가 부족해서 2명은 구경만 하다 수업을 마친다.
음식 맛은 특별하지 않아도 분위기가 좋아서 찾는 식당이 있고, 맛이 좋아도 주차가 불편하면 가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물리적 환경은 학습을 촉진하기도 하고,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능이 낮고 수량이 부족한 기자재나 사용 시간에 제한이 있는 실습실은 학습자를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학교가 교육에 관심이 부족하거나 학생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갖게 한다. 이는 결국 학습 의욕 저하로 이어진다.
모르는 것을 질문해도 명쾌한 답을 듣지 못한다.
한 학기가 다 되어가도록 교수님이 내 이름도 모르시는 것 같다.
교수님이 학생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부담스럽고 어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요즘 세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의 핵심 조건 중 하나는 '존중받는 분위기'라고 한다. 학습자가 교실에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른바 라포(rapport) 형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교수자가 학습자에게 무관심하거나 권위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학습자는 거리감과 심리적 위축감을 느껴 질문이나 의견 표현을 주저하게 된다. 이는 결국 수업 참여 동기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열심히 하고 싶지만 매일 저녁 아르바이트 때문에 피곤해서 늘 지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너무 싫고 조용히 강의만 듣고 싶다.
졸업장만을 목표로 진학했고, F 학점만 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저 전문대 졸업장이라도 필요할 것 같아서 진학했다는 학생도 있고, 4년제 대학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 학생도 있다. 한 학기가 다 가도록 항상 혼자 지내며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이러한 개인적 조건들은 교수자의 수업 노력이나 교육 내용과는 무관하게 학습자가 수업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도록 만든다. 미리 언급하자면, 이는 내가 '수업의 개인화'를 강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학습자의 개인적 상황이지만, 이 또한 결국 교수자가 풀어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