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중심 루브릭 기반 현장실습평가를 활용한 공통핵심역량의 향상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을 떠올려 보면, 필기시험과 기능시험을 통과한 뒤 실제 도로에서 운전 연수를 마쳐야 면허증을 발급받는다. 이때 도로주행 연수는 필기시험을 공부하면서 배운 지식과 연습장에서 코스를 돌며 배운 기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보는 단계이다. 전문대학의 현장실습이 바로 이 단계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도로 연수가 운전석 뒤에 앉아 바깥 경치만 구경하는 시간으로 끝나거나 좌회전도 차선 변경도 없이 직진만 반복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면 도로연수의 교육적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문대학 교육의 핵심은 현장 실무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학습 전이가 중요하다. 이러한 학습 전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이 현장실습으로, 학교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실무 중심의 역량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대학에서는 더 많은 학생이 현장실습에 참여하도록 각 학과에 일정 인원 이상의 참여를 요구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은 해가 갈수록 현장실습을 기피하려는 경향이다.
많은 수의 학생에게는 현장실습보다 당장 생계에 도움이 되는 아르바이트가 더 절실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자유로운 방학 기간 중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실습에 얽매여야하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현장실습을 통해 학생 본인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여겨진다. 모든 실습 현장이 똑같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실습을 마친 학생들의 경험담과 대학이 수집하는 실습일지, 평가서를 살펴보면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있고, 교육적 측면에서 아쉬움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즉 현재의 현장실습 운영 실태로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기대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나 얽매임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현장실습도 학점이 있는 교과목이다. 학생의 성장이라는 교육적 효과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교실이 아닌 실제의 업무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크게 현장감과 자신감이 아닌가 싶다.
글의 머리에서 비유했듯이 운전자의 뒷좌석에 앉아서는 현장감을 느낄 수 없다. 물론 업무가 진행되는 현장에 몸은 있지만 내가 참여하고 주도하는 상황이 아니다. 막연히 현장에서 배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학교와 산업체는 협업해서 실습기간 동안 경험해야 할 업무의 내용과 범위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 처음에는 심부름과 보조에 그치더라도 점차 작은 역할이라도 무언가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가 학생에게 주어져야 한다.
자신감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해냈다'는 구체적인 성취 경험에서 나온다. 학생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잘 자각하지 못하므로, 외부에서 이를 확인시켜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고 본다. 잘 한 것은 잘했다고, 미흡한 점은 이것만 보완하면 조금씩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현장감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실무능력을 배워야 한다. 이왕이면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워야 한다.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각 분야별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는 한편, 모든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능력도 있다. 이 가운데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역량을 보통 핵심역량이라고 하는데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역량을 현장에서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첫째, 직무수행에 대한 성실함, 책임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출퇴근 시간을 준수하거나 지각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맡은 업무에 진지하게 임하는 등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 또한 일에 대한 책임감과 기업의 규정과 윤리, 안전 및 보안에 관한 자세도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대인관계 및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야 한다. 상사와 동료와의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조직의 질서와 분위기를 이해하며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 예절, 전화와 이메일 응대, 호칭 사용 등 직장예절을 익혀야 하며, 상사의 지시를 정확히 파악하고 업무 진행 상황을 적절히 보고하는 소통 능력도 갖춰야 한다.
셋째, 문제 해결 및 자기주도성을 발휘해야 한다. 낯선 업무를 빠르게 이해하고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찾으려는 적극성을 발휘해야 하며,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거나 적절한 도움을 요청하는 문제해결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성과 자기주도성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핵심역량이 실제로 교육되고 평가 과정에서 제대로 포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일부 대학의 현장실습 평가표를 분석해 보면, 평가 항목이 모호하고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큰 경우가 많다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실무관련 지식’, ‘업무숙지 능력’, ‘업무이행 능력’, ‘작업환경 적응력’과 같은 항목은 구체적인 행동 기준 없이 추상적 용어로만 제시되어 있어, 평가자가 임의로 해석해 점수를 매기기 쉽다. ‘성실성’, ‘책임감’, ‘안전관리 준수’ 등 태도 영역의 평가 역시 명확한 체크리스트나 행동 기준 없이 점수만 부여하는 방식이어서, 평가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일관된 평가가 어렵다. 8점, 4점과 같은 세부 점수 구간이 제시되어 있더라도, 그 점수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행동 차이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가 의견란 역시 짧은 형식적 코멘트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아, 점수 외에 학생의 강점이나 개선점에 대한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도구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왼쪽 평가표는 실제 사례다. 업무숙지 및 이행 능력은 각각 6점으로 D학점 정도지만 평가의견에는 '업무이해습득이 뛰어남'이라고 적혀 있다. 현장실습 평가가 얼마나 형식적인지 보여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습 평가를 구체적인 행동 중심의 루브릭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루브릭은 각 평가 항목별로 관찰 가능한 행동 기준과 성취 수준을 단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평가자의 주관을 줄이고 평가의 객관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도구이다. 예를 들어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할 때, “업무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해결 방안을 고민하거나 적절한 시점에 도움을 요청했는가?”와 같이 신입 직원이 실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처럼 행동을 중심으로 질문을 구성하면, 현장 담당자는 학생의 구체적 행동을 떠올리며 비교적 쉽게 평가할 수 있고, 학생 역시 실습 전부터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여야 하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평정 척도는 ‘아주 그렇다’, ‘대체로 그렇다’, ‘대체로 아니다’, ‘전혀 아니다’, ‘평가 불가능’과 같이 단계적으로 구성하여 학생의 수행 수준을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각 문항마다 ‘관련 피드백’란을 두어, 점수의 이유와 관찰된 행동을 간단히 기록하게 하면, 평가가 곧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루브릭 기반 평가 체계는 평가 과정을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행정 절차에서, 학생의 핵심역량을 진단하고 성장 경로를 제시하는 교육적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장치가 된다.
실습 전에 대학은 핵심역량 평가 기준과 루브릭을 학생에게 충분히 안내하여, 현장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산업체 현장 담당자에게도 행동 중심 루브릭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학생을 관찰·평가하고, 가능하다면 중간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간단한 가이드북이나 예시를 소개하는 등 지원이 필요하다. 실습 후에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학생의 강점과 개선점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과수업이나 취업 지도, 진로 상담에 활용해야 한다. 또 수집된 평가 결과를 교육과정 개선과 품질관리(CQI)에 적극적으로 환류해야 한다.
이 글은 현장실습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 그러한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핵심역량 평가와 피드백 체계를 어떻게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자 했다. 루브릭에 언급된 항목들이 평가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학생에게는 구체적인 목표가 되기도 한다. 현장실습이 좀 더 내실화 되고, 학생들의 참여의지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