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자료 수집 - 다양한 시선의 평가 - 문서화로 이어져야 한다
교과목 CQI를 작성하지 않는 대학은 없다. 모든 교수들은 학기말이 되면 교과목 CQI를 작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내가 교과목 CQI를 처음 접한 것은 소속 대학이 공학교육인증제를 시행한 2011년 무렵부터다. 당시를 돌아보면, 짤막하게 한 학기 수업에 대한 소감과 고쳤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는 것이 교과목 CQI라고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낯선 제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졌을 교수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러나 10~15년이 지난 지금, CQI는 실질적인 수업 개선 도구가 아닌 형식적 의무로 전락한 상태로 보인다. 건강검진을 하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환자의 안색만 살피거나 환자의 말만 믿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면 대다수의 사람은 그 진단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시행해 온 CQI가 대체로 이런 방식이다. 특별한 근거 없이 '실습 수업의 비중 강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두루뭉실한 개선 계획만 내놓고 있다.
전체 교수진의 CQI 보고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2~3년씩 CQI의 내용이 똑같은 것은 비일비재하였고, 어떤 교수는 다른 교과목임에도 똑같은 내용의 CQI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많은 교수들은 ‘이런 쓸모 없는 일을 왜 하게 하느냐’고 불만이었고, 대학 측에서도 전체 교수에게 교과목 CQI를 의무화했다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책을 가져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무부나 교수학습개발센터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관평가인증 보고서에 교과목 CQI 보고서 작성 100%라는 실적을 기재하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물론 교수자는 학생들을 한 학기 동안 관찰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떤 부분의 성과가 미흡했는지 대략은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직감에 의존한 진단과 처방은 막연하다. 기침하니까 감기약 주고, 배 아프다고 하니 소화제 주는 모습이다. 약이 들을 수도 있지만, 엉뚱한 처방이라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올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픈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진을 하고, 청진기로 숨소리를 듣고, 엑스레이를 찍거나 혈액 검사를 하여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한다. 수업 개선 또한 마찬가지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학습 목표를 얼마나 성취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감'이 아닌 '증거'가 필요하다.
수업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자료는 크게 수업을 위해 투입된 '교수자가 만든 자료'와 수업의 결과로 나온 '학습자가 만든 자료', 그리고 '피드백 자료'의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수업 자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교수자가 제공한 투입(Input)이 적절했는지에 따라 학습자의 산출(Output)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수자가 만든 자료에는 강의계획서, 강의 교안, 과제 제시문, 시험 문제, 수업 안내 자료, 구두로 전달한 지시 사항 등이 있다. 학습자가 만든 자료에는 과제물의 결과와 시험의 답안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학습자의 태도나 습관에 대한 교수의 관찰 기록, 동료 교수의 조언, 외부 컨설팅 결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이 의미 있는 CQI의 첫걸음이다.
객관적인 성과 데이터 외에도 학생들의 주관적인 인식과 의견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무부 등에서 일괄 실시하는 강의평가나 재학생 만족도 조사로는 대략적인 현황은 알 수 있지만, 개별 수업의 구체적인 문제점을 짚어내기에는 문항이 너무 포괄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수업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항목의 설문조사를 따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수업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대상은 교수자가 만든 자료들이다. 강의계획서, 주차별 교안, 과제 제시문, 시험 문항 등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마치 자신이 쓴 글의 오타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교수자가 본인이 만든 자료의 결함을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기 분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우선 학생들의 시선은 강의평가나 설문조사를 들 수 있다. 아직 우리의 문화에서는 낯설 수 있지만 동료 교수와의 피어리뷰를 통해 수업 내용이나 수준 등이 적절한지를 점검받을 수도 있다. 우수 티칭포트폴리오를 대학에서 선정해서 공개하는 것도 교수자 자신의 자료를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자가 산출한 자료를 분석할 때는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것을 넘어 두 가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첫째는 학생이 목표한 성취 수준에 도달했는가의 여부다.
여기서 많은 교수자들이 간과하지 않나 염려되는 것이 학습목표를 측정하기에 적합한 평가방법을 사용했는가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예를 들어 '건축재료에 관한 지식을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학습목표로 제시하고는 정작 시험문제에는 '목재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하라, 석재의 종류를 나열하라' 등으로 출제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이고, '목재가 주방의 바닥재료로 적합한가'라는 형식으로 물었어야 한다는 얘기다.
평가방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두 번째는 과제 제시문이나 시험 문항 자체의 결함이나 부적절성 등 교수자가 제공한 자료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발생했는가의 여부다.
예를 들어, 특정 문항에 대한 정답률이 아주 낮다면 문항 자체에 생소하거나 모호한 표현이 있었거나, 수업 중 다루어진 설명이나 자료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처럼 학습자가 생성한 산출물과 교수자가 만들어낸 자료를 연계시켜서 분석할 때 CQI는 ‘직감’이 아닌 ‘증거’에 기반한 개선 도구가 될 수 있다.
CQI의 목적은 보고서 작성이 아니라 수업 개선이다. 그렇다면 문서화는 하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수업을 개선해 나가는 경우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강의계획서를 입력할 때나 개강 후 수업을 하는 중이라도 더 나은 수업을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때그때 기록하고 실행하는 것도 의미있는 CQI다.
그것이 사소하든 크든, 한 개든 여러 개든 실천한 개선 사항을 간략하게 기록해서 제출하면 업적평가로 인정해주고 대학에서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록 양식도 간략하게 '적용한 아이디어'와 '그렇게 생각한 배경' 두 가지 정도로만 정리하면 충분하다. 아래는 내가 실천한 수업 개선 사례를 간략하게 정리해 본 것이다.
CQI의 본질은 보고서 작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업 개선에 있다. 하지만 '문서화'를 단순히 귀찮은 행정 절차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직감이나 기억에 의존한 개선은 일회성에 그치기 쉽지만, 충실한 자료에 근거하여 체계적으로 정리된 개선 사례는 교수자 본인에게는 지속적인 성장의 발판이 되고, 동료 교수들에게는 훌륭한 참고서가 되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복사해서 붙여넣기'식 보고서가 아니라, 학습자 산출물과 교수자 자료에 대한 치열한 분석이 담긴 보고서는 그 자체로 대학의 중요한 교육 자산이다. 이러한 '근거 있는 기록'들이 모여 공유될 때, 한 교수의 고립된 고민은 대학 전체의 교육 노하우로 확장될 수 있다. 전문대학 교육의 질적 도약은 바로 이러한 체계적인 기록과 공유의 문화에서 시작된다. '숙제'로서의 CQI를 넘어, '공유와 성장'을 위한 CQI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