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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Feb 26. 2020

눈 빛 안의 풍경

사람의 눈을 마주하는 방법

눈빛에서 풍경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눈 안에서 옅은 갈색의 나무 숲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눈을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보고 있다'라는 의식을 하고 나서도 어색해지지 않았다. 눈을 보고 말하는 것이 좋아서, 시선을 마주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사람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면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색했다. ‘눈을 본다’라는 행위를 의식하면 더 난감해지곤 했다. 시선을 피해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되니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어떻게든 상대방과 꼭 시선을 맞추어 보려 마음먹었는데 사람의 눈이 두 개라는 장벽에 부딪혔다. 두 눈을 동시에 보자니 초점이 흩어졌다. 실패였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시선을 나누며 사는 걸까 궁금했다.

친구들에게 이 어려움을 말했더니 나에게 몇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첫 번째 방법 양쪽 눈을 모두 보는 것이 아니라 한쪽 눈만 본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실제 유용했다. 나는 상대방의 왼쪽 눈이나 오른쪽 눈을 정해 한쪽만 보았다. 그랬더니 초점이 잡혔고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한쪽 눈만 보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너무 한쪽 눈만 본다 싶을 때는 가끔씩 다른 쪽으로 바꾸기도 했다. 두 번째 방법 사람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 1센티 앞 먼지를 보라는 것이었다. 실소를 터뜨렸지만 이것도 유용했다. 자리가 길어져 눈을 바꿔가면서 보는 것도 지칠 때면 이 방법을 썼다.


마지막으로 알게 된 세 번째 방법 제일 효과적이었는데 그것은 눈과 눈 사이 ‘미간’을 보라는 것이었다. 눈을 보지 않는데 과연 눈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미심쩍었는데 상대방은 정말 내가 눈을 보고 있다고 여겼다. 세 번째 방법이 초점도 잘 잡히고, 몰래 시선 위치를 바꾸지도 않아도 되고, 공기나 먼지를 보는 따위의 이상한 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상대방의 눈을 ‘보는’ 법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눈을 보지 않으면서 눈을 보고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요행만 알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언젠간 누군가 이 속임수를 알아챌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말하는 편이 낫다 생각했다. 그러던 날, ‘눈 안에 풍경을 본다.’라는 새로운 해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로 상대방의 눈을 대할 때는 그 안에서 그가 가진 고유의 풍경이나 느낌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적어도 이 방법은 나에게 어울리고, 상대방을 정말로 ‘보는’ 것에 가까운 방법인 것 같았다. 그제야 앞에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소통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에게선 먼바다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어떤 사람에게선 뜨거워도 부드러운 불길을 보았다.

좋은 방법을 알았다지만 오랫동안 시선을 피하는 버릇이 들어있어 연습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상대방을 정말로 보며 이야기하는 느낌이 좋아 어려워도 조금씩 단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다 보니 어떤 날은 ‘풍경을 본다’라는 생각도 없어지고 그가 나에게 보이는 표정 안에서, 내가 그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눈 맞춤이 이루어지는 날도 있었다. 잠들기 전, 그날 사람들이 보여준 좋은 눈빛을 떠올려보던 밤도 새로워 기억에 남는다.

상대방을 보려고 숙였던 고개를 자꾸 들게 되니 어느 날은 다른 주변이 보였다. 이것은 내가 본 풍경 중에 손에 꼽게 좋은 모습인데, 그것은 다른 이들도 나처럼 눈을 다 바라보지 못하고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로 이야기하며 눈을 바라보다가 부끄러울 땐 잠깐 피했다가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마주 보다가 웃다가 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보는 그 풍경이 마치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왈츠의 춤을 보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왜 그렇게 오랜 날 속 졸이며 살았던가. 이제 나는 사람의 ‘눈을 본다’라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과 감정을 더 잘 나누기 위해 필요한 만큼 눈을 사용한다.


처음 눈 안에 풍경을 보았던 날, 그 때의 느낌과 가까운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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