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울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날을 기억한다. 어렸지만 나는 엄마가 이제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 날부터 작은 일에 울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마음을 바꾸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이답게 서러워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빠는 나의 아이답지 않음을 늘 낯설어했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기억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엄마가 나를 안아주었던 기억이다. 마당에서 오빠와 동네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놀았는데, 나는 어려서 바로 잡혔다. 잡힌 사람은 귀신이 되는 거라 오빠가 말했고 나는 그게 무서워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품에 안겨 내가 귀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오빠가 그랬다고.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엄마가 나를 귀찮다 밀어내면 나는 그대로 귀신이 될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가 안전하다 느낄 때까지 안아주었다.
두 번째는 엄마랑 오빠랑 창고에 숨어 있었던 기억이다. 어느 밤, 엄마는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 창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는 절대 나가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쓰지 않는 의자들이 뒤집혀 쌓여있는 창고 안에서 우리는 아빠가 잠이 들 때까지 숨어 있었다.
세 번째는 엄마가 집을 나가던 날. 엄마가 계단을 너무 빨리 뛰어 내려가서 넘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급히 신발을 신는 나에게 엄마는 "내려오면 안돼, 너는 여기 있어야 해." 하고 말했다.
"엄마, 나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어?" 하고 지금의 내가 물으면 엄마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자주 이야기하는 두 가지, 가끔 이야기하는 한 가지. 첫 번째는 내가 화장실 가는 것을 너무 오래 참고 있길래 엄마가 왜 그러냐 물었더니 엄마가 쉬를 누여주기 힘들까 봐 말을 안 했다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속이 터지고 화가 나서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내가 밖에서 목마를 타고 놀다가 엄마에게 '서 있는 거 힘드니 먼저 들어가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 타고 알아서 집에 찾아가겠다고. 황당한 엄마는 내가 정말 잘 찾아올 수 있나 보려고 그래 알았다 하고 들어가는 척 숨어 지켜봤다고 했다. 나는 길을 잃었고 결국 엄마가 손 잡고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엄마가 돌아가며 해주는 이야기다. 마무리는 항상 "크면 좀 나으려나 했는데 똑같다. 어디 가서 손해보지 말고 좀 약게 살아라." 한다.
남은 한 가지 이야기는 큰 사건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엄마가 이모들이랑 만났을 때 하는 말인데, 내가 집에 있는 회전의자에 오르려고 혼자 몹시도 용을 쓰더라는 거다. 쪼그만 애기가 에고, 에고, 하는 소리를 내면서 낑낑대는 모습이 귀여워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이모들도 그 자리에 있었는지 맞아 맞아 그때 정말 웃겼지 하며 함께 깔깔 웃는다. 어릴 적 내 기억에는 없는 이모들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다. 무엇보다 엄마가 내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게 좋다.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엄마가 소리 내어 웃는다. "너 어릴 때 얼마나 웃겼는지 아니?" 하며 아주 활짝 눈물 나도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