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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nsoo Jan 13. 2020

마음

어쩌면 내 마음은 무감각한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음은 무감각한 것 같다. 나는 내 눈 안에 있고 평소에 내 눈 안은 고요하다. 내 아픔이나 눈물 같은 건 하루를 사는데 피곤하고 귀찮은 감정이다. 나는 슬픔을 센 불에 바글바글 끓여서 기화시켜 하늘로 어서 날려버리고 싶다. 눈물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그냥 손수건을 쥐고 있다거나 젖은 양말을 벗기만 하면 된다. 대인관계의 최전방인 눈에서 왜 물이 줄줄 흘러나와야 하는 걸까. 왜 울고 난 얼굴은 엉망인 걸까. 지끈지끈한 두통은 또 어떻고. 어쩌면 오랫동안 정리하지 않은 냉동고가 내 마음의 모습이겠다.


나는 나라는 존재가 눈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가진 몸에 뚫려있는 눈이라는 창 밖으로 세상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내 외형을 보는 시간은 샤워를 하고 나와 화장을 할 때, 외출 전이나, 화장실에 갔을 때. 잠깐 뿐이다. 


내 눈은 바깥을 향해서만 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궁금해하지만 스스로의 눈으로는 자신을 다 볼 수가 없다. 나는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을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특히 짧게 스치듯 웃는 모습 같은 ) 나는 내 일상의 표정을 직접 볼 수가 없다. 카메라나 거울 같은 도구를 사용하거나 가끔 사람들이 말해주는 내 인상을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비추어보고 또 비추어주어야 하는 건 필연적인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날씨가 무척 좋았던 날. 지인과의 약속이 취소되었다. 상대방이 나와 약속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성이 잘 되어있는 공원에서 나는 개울이 흘러가는 게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나는 사실 갑작스레 약속이 취소되는 일을 좋아한다. 혼자서 잘 놀기도 하고 계획으로 채워져 있던 시간이 느슨히 풀어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약속이 취소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두 이해가 가는 선이다.


그런데 그 날은 좀 달랐다. 마음이 울렁였다. 서운했다. 맑은 개울이 졸졸졸 흘러가는데, 바람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가 정말 좋은데, 참새가 그 안에서 물을 튀기며 목욕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운데. 약속이 취소되지 않았으면 아마 보지 못했을 이 평온한 노래 같은 풍경 안에서 혼자 남겨진 시간이 너무 심심했다.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미안하다는 문자에 괜찮다는 답을 하지 못했다. 괜찮지가 않아서. 답을 못하다니.  그런 자신이 어색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순간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쉬움, 서운함. 상황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 피노키오에게 요정이 숨을 불어넣으면 생기가 돌며 나무 조각에서 진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때에 내가 조금 살아난 것 같았다. 얼어있던 손 끝에서 사람다운 온기가 도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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