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내가 아침부터 밤까지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는 날이다. 나는 아주 소중하고 작고 동그란 6살 남자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평일에는 어렵지만 토요일에는 남편이 아이를 봐주고 나에게 온전한 하루의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거나 한다. 어젯밤에는 남편에게 “아침부터 나는 나갈 거야! 아마 눈 뜨면 없을 걸!”이라고 선언했지만, 셋이서 같이 밥을 먹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에 아침부터 유부초밥과 계란국을 만들고 있다. 마음은 이미 외출했지만 몸은 다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점심때에는 기타 수업이 있다. 선생님의 쓰시던 클래식 기타를 사기로 했는데, 파시기로는 했지만 아끼는 것이라 다시 고민이 되시는 가보다. 내가 그 기타의 새 주인이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려면 배운 것을 성실히 연습해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기타가 정말 마음에 든다. 모르지만 처음부터 정이 갔다. 밥을 먹고 수업에 가기 전에 배운 것을 잠깐 복습했다. ‘자, 그럼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쳐볼까요?’ 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조용하고 차분하고 완벽하게 쳐내야지.
시간이 되어 기타를 메고 집을 나섰다. 아들은 TV를 보느라 건성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다 컸네. 걸어가는데 그림 일을 맡겨주신 곳에서 전화가 왔다. "급하게 맡긴 일이라 죄송하긴 한데요. 오늘 스케치 시안 만이라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부담스럽긴 했지만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어제 받은 일의 스케치를 오늘 보여주어야 한다니, 마음의 동요가 왔지만 일단 기타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루를 잘 쪼개어 쓰고 나누어진 시간들은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해.’ 아이를 키우며 시간이 소중해진 나의 일상 구호다.
연습곡은 무사히 연주해냈다. 그리고 난이도가 있는 새로운 연습곡을 시작했다. 치기 어려운 하이코드의 4 연타에서 헤매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새 보고 있는 책이 더 기타리스트라는 책인데요. 그 책에 나오는 글 중에 기타를 처음 칠 때 ‘내 손이 마치 남의 발이 된 것 같았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나도 막 기타를 치는 내 손이 마치 이겨진 지점토 같다고 생각하던 차라 무척 공감이 되었다.
기타를 배우며 내 손이 내 손 같지 않게 느껴지고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때가 있는데. 그땐 갑자기 아주 늙은 할머니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조금씩 잘 되어 갈 때는 다시 젊어지는 것 같다. 그 느낌이 굉장히 간지러워서 혼자 연습하며 웃기도 한다.
저녁이 되기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를 얼른 끓여먹었다. 스케치 작업을 보내줘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림 그리기의 시작이 스케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케치 시안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전체를 다 기획하고 결을 맞춘 다음에야 그것의 제대된 세부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잘 되지 않으면 다시 전체를 수정하고 과정을 반복한다. 간단하게 스케치 만이라도, 라고 하신다면 마치 신혼 때 남편이 우리 주말인데 간단하게 잔치국수나 해 먹을까 하고 말하던 때가 생각나서 잠시 슬퍼지고는 한다.
밤 11시 20분, 스케치가 괜찮게 나온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 O.K를 받았다.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데 사람들과 좋은 일을 같이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천천히 더 노력해서 일을 더 잘하게 된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남편이랑 아이랑 먹으려고 바나나 우유 세 개를 샀다. 문 여는 소리에 혹시 아이가 잠에서 깬다면 어제처럼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주려나.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으려나. 아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