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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Feb 16. 2016

분노조절장애 상사님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10년도 더 된 일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감정 절제가 잘 안 되는 남자 상사분이었다.

 그날도 정신없이 마감업무를 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시더니 마지막 내뱉은 말..

 "똑바로 못해?!!.. 씨발.." 쾅.

 전화기 너머 들리는 욕지거리는 눈 앞에서 듣는 말보다 몇 배의 충격으로 나를 강타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오해였다. 설령 내 잘못이었다고 쳐도 "씨발"이라니..

 아니 내가 씨발년이란 말인가.

 

 울면 안 되는데 온 몸을 들썩이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심장이 뛰고 어깨가 떨렸다.

 아이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되어 호르몬도 왕성했던지 감정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성의 끈이 가볍게 뚝 끊어졌다.

 

 "방금 마지막 하신 말씀 <씨발>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맞으십니까.

  아니라면 아니라고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냈다. 마감업무로 시끄럽던 지점이 일순간 적막.

 

 내가 다녔던 회사는 외국계로 '성희롱'등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본사에 신고하면 웬만하면 가차 없이 해고다.

 물론, 성희롱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성희롱이 나을 뻔했다.

 차라리 내 엉덩이를 움켜쥐는 게 나을 뻔했어... 내가 니 손을 내 엉덩이에 얹어서라도 널 조져주마...

 

 십분 뒤 지점장실에 호출되어 나란히 들어갔다. 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고, 그분이 내미는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내게 한 말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던 중 본인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 순간 튀어나온 말이었다.

 사과를 하셨다. 진심으로 미안해하셨다.

 지점장님은 다음 날 본인의 카드를 내주시며 둘이 같이 식사라도 하라고 하셨다. 다른 직원 한 명과 셋이 식사를 했는데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며칠 전 그 지점 사람들을 만났다.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며 저녁도 하고, 술도 한잔.

 어김없이 반가이 맞아주시는 ㅆㅂ상사님....

 미리 예약도 하시고, 알아서 계산도 하시던 멋쟁이 옛 상사의 나이를 계산해보다 깜짝 놀랐다. 그분은 나보다 13살이 많으시다.

 요즘 힘든 일 하고 계시다는 그분의 넋두리가 너무 가슴 아팠다. 10년 전 까칠하던 상사는 온대 간데없고, 오래된 내 신랑처럼 측은하고 가엾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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