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이치로-의 책입니다.
" 직장인은 사회에 나와서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은 마흔의 목소리를 듣는 중년이 되었을 때. "
"회사 생활은 단거리 경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다."
-최후의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조언-
(나의 후회 1-12)
1. 입사 첫날부터 사장을 목표로 전력 질주했어야 했다.
2. 회사의 색깔에 물들었어야 했다.
3. 롤모델을 조금 더 빨리 찾았어야 했다.
4. 사내의 인간관계에 관심을 더 가졌어야 했다.
5. 자만하지 말았어야 했다.
6. 부족한 상사나 싫어하는 상사에게 다정했어야 했다.
7. 공부를 더 했어야 했다.
8. 골프를 시작하고 와인에 대한 소양을 쌓았어야 했다.
9. 신념을 버렸어야 했다.
10. 창의적이기보다 건실했어야 했다.
11. 주위로부터 호평을 얻기 위해서 오래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
12. 동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웃으며 넘겼어야 했다.
퇴사 후 읽었는데 구구절절이 마음에 공감이 일었다.
한편 안타깝기도 하고, 뒤늦게 공감하며 반성하기도 했다.
좀 더 프로처럼 굴어야 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할걸.. 퇴근 후 술자리를 혐오하지 말걸. 정치적 인간들을 비난하지 말걸.
이제 와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건 또 뭔가 싶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좀 더 마음에 여유를 갖고 제대로 날 관리하지 못했던 게 후회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며 날 설득해보자면.
그 생활이 쉽지 않았다.
나는 출근길에 아침마다 카페에 들러 15분씩은 허공을 쳐다보며 정신 나간 여자처럼 앉아 있었다.
오늘은 또 어찌 버티나. 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도 아침마다 그렇게 답답했다.
사람 만나는 걸 지금도 이렇게 예민 떨며 싫어하는데.
매일매일 사람을 대하고 설득하고 감정까지 나눠야 한다는 게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됐었다.
그래도 또 장사는 해야 하니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살가운 척을 하며 수선을 떨어야 했다.
무턱대고 아무 상품이나 갖다 팔 수는 없지 않나.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벌이는 어떠한지, 건강은 어떠한지, 성향은 어떠한지 대충이라도 알아야 돈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권유했던 그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의 돈이 무슨 스토리의 돈인지 지금도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난다.
내가 모셨던 PB상사분이 일곱 분 정도 됐었는데, 그중 세분이 암에 걸렸다. (PB가 아닌 상사 분도 두 분 암에 걸렸다.)
암에 걸리지 않으신 분 중에 한 분은 퇴사를 하셨고, 암에 걸린 분 중에 두 분은 병가휴직 후에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내가 모셨던 분들 중에서만 이 정도이니 회사 전체적으로 보면 암에 걸리는 일은 흔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됐다는 소식도 종종 들려왔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특히 PB 중에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봤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적에 대한 압박은 대단하다. 그걸 초월해서 그걸 무시하는 용자도 물론 있었지만, 딱 두 명 봤다.
사람의 자존감을 긁어대며 집요하게 못살게 굴기 때문에 그걸 자신과 떨어뜨려 놓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다. 참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거기 있으면 또 그렇게 된다. 실적이 곧 자신이 되는 곳. 못하면 바보 취급.
신랑이 있었던 부서에 대기업을 담당하는 상사가 있었다. 대기업을 상대하는 일은 확연히 또 다를 것이다. 갑과 을의 관계는 당연하고, 뭐 하나 깨끗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쌓이기만 했다고 한다.
그 상사분은 자살을 했다.
여느 날과 같이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고 12시가 넘어 퇴근을 했다. 그다음 날은 업체에 들렸다가 늦게 출근할 계획이었으므로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중학생 딸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셨단다. 러닝과 파자마 차림으로 나간 남편이 한참을 들어오지 않자 부인이 베란다에 나가봤는데 베란다에는 남편이 없었다.
스트레스의 압박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분의 장례식에 모인 직장동료들의 깊은 '공감대'였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며 끄덕거리는 이 동료들의 어처구니없는 공감대.
그게 왜 끄덕거릴 일인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오면 되는 일인데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벽에 갇혀 있는 듯 보였다.
이 단순한 생각을 그들이라고 못하는 게 아니겠지만.
이미 젊지도 않고 남다른 스펙도 없는 그 또래의 남자들은 현재의 직장에서 나오면 그것이 곧 본인의 마지막이라는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그들의 세계에선, 조직에 순응하며 살아온(까라면 깠던) 세월이 전부인 듯 보이기도 했다.
그게 또 이해는 되면서도 참 위태롭고 안타까워 신랑을 몇 번이나 타일렀었다.
끄덕이며 공감하지 말고, 직장을 나오라고. 직장을 나오면 된다고. 죽을 일이 아니라고.
근데 하필. 업무의 이동이 일어난 조직 안에서 신랑은 돌아가신 그분의 방에 배정되었다.
아직 그 일을 할 만큼 경력도 되질 않은 상태였는데 신랑은 어이쿠나 싶었을 것이다.
그 이후 얼마 안 되어 다른 직장으로 옮겨갔다.
나와 같이 퇴직을 하신 분 중에 어느 한 분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다.
나는 잘 모르는 분인데 불구하고 안타까워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됐었다.
꽤 높은 직급에 계신 분이었고, 경력도 대단하신 분이라 들었는데 어찌하다 그렇게까지 되셨을까.
그분은 퇴직하고도 1년 동안 퇴직 사실을 부인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울증도 있었다 들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이직이 많은 것 같다. 똑똑한 세대인 그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조직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다 세상 밖에 나와 아직도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한 7-8년 전에 회사에 들어오던 신입들의 스펙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니 이 학벌에 이 스펙에 이 집안인데 왜 이런 곳엘 왔냐며 다른 좋은 곳으로 가라고까지 했었다.
(뭘 몰랐던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나 취업난인지. )
실제로 몇몇은 금방 관두고 나가기도 했었다.
조직생활 3년 차, 5년 차, 10년 차, 20년 차... 각각의 위치에서 느끼는 점들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각 나이에 느껴지는 현실적인 책임감도 다르다.
능력 있는 젊은 세대, 그 위 '까라면 깠던' 세대, 그 위 '꼰대'들..
하지만 모든 퇴사자들은 이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 같다.
내가 겪은 이 모든 혼란과 당황스러움, 방황, 그리고 다시 본인의 진정한 일을 찾아가는 이 모든 과정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