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궁금한ᆢ 특히 그 호스트 총각
1. 그는 벌건 대낮에 정말 완전 취한 상태로 내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왔다.
상품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다며 특별히 담당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이 젊고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는 자신을 호스트(그러니까 호스티스 말고 호스트. 남자. 호스트)라고 소개했다.
이 일을 계속할 건 아니에요. 제 꿈은 연예인인데 잠시 돈을 벌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근데 제가 지금 돈을 많이 벌고 있는데 낮시간엔 주로 잠을 자야 해서 벼르고 벼르다가 오늘 나왔다... 는 것이다.
잠시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나 왠지 이 사람이 싫거나 거부감이 일지는 않았다.
아. 당신도 웃음 팔아 돈을 버는구려 하는 묘한 동질감까지 느껴졌다면 좀 오버일까.
다짜고짜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은 물. 물 좀.. 주세요. 였다.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며 컵을 찾으니 컵 안 주셔도 돼요. 통째로 주세요. 하며 벌컥거리며 단숨에 마셔버렸다.
목도 많이 마르고 무척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정말 당장 꼭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모습이라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조목조목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며 진지하게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꿈이 확실하고 계획도 있었다. 버는 돈을 제대로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지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그 고객께 맞는 상품을 권유하고 가입시켜드렸다.
투자에 대해 상식도 많고 미리 생각해 둔 본인의 계획이 확고했다.
젊은 사람 치고는 꽤 큰 금액을 적립식 상품에 가입을 하고 돌아갔는데 그 고객이 돌아가고 나서 우르르 직원들이 괜찮냐며 들어왔다.
그다음에도 보름에 한 번 정도 찾아오곤 했는데 그때부터는 말없이 음료수병을 통째로 꺼내 줬다.
매너도 좋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가끔 깜작 놀랄만한 목돈을 들고 왔다.
몇 번의 상담 후에 내가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는데 지금쯤은 어딘가에서 꿈을 이뤘을지 궁금하다.
2. 설명드린 상품에 대해 신청서를 받고 신분증을 받아 막 오퍼레이팅 직원에게 넘긴 찰나였다.
-제가 주민등록증 나이보다 몇 살이나 많아요... 그러니까 5년 정도.
제가 형제가 많았는데.. 저 빼고 다 죽었어요. 다섯인가 여섯인가.
그러니까.. 집터가 좀 세다고 해야 하나.
뭐 옛날에는 그런 일이 많았잖아요.
처음엔 사고려니 했는데. 다른 형제들까지 말도 안 되는 사고로 갑자기 죽고 그러니까.
부모님이 저는 아예 출생신고도 안 하시다가. 집을 허물고 이사를 하시면서 뒤늦게 올리신 거죠.
뭐. 좋아요.. 원래 나이보다 몇 살이나 더 일을 할 수도 있고.
막상 정년까지 하지도 못하겠어요. 벌써 힘들어 죽겠는데요. 뭐.
아.. 그렇죠. 제 형제들은 다 죽었어요. 저만 살았다니까요. 그런 일 흔하였잖아요.. 왜.
40 후반이신지 50초 반이신 아주머니셨는데. 눈빛이 어딘가 불안해 보이셨다.
아. 예. 그러시군요..
아.. 흔했나요. 그런 일이.
3. 옆방에 들어가면 슬그머니 문을 닫고 2시간을 울다 나오시는 젊은 여자분이 계셨다.
이 분은 누가 봐도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맘 좋은 직원이 한두 번 얘기를 들어주다 아예 상담자 역할까지 해주게 된 것이었다.
친해지다 보면 속 얘기하는 고객들이야 많다지만 이건 좀 경우가 지나쳤다.
때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싸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 놀라 뛰어가 슬쩍 문을 열어보면
직원은 괜찮다고 눈짓을 했다.
2시간을 소리 지르고 울고 조금씩은 거래도 하셨는데.
언젠가 강사를 본점에서 초빙해 인근 카페에서 하는 세미나에 초청했었는데.
강의가 끝난 강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날카롭게 질문을 해대던 이 분은 이상한 논리로 그 강사님을 당황시킨 것은 물론.
혼잣말 끝에. 그 상담자 역할을 해준 직원까지. "별 그지 같은. 직원 같지도 않은 직원"이라는 소리를 해댔다.
옆에 있던 고객님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화가 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쏘아붙였다.
우리 직원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지나치시다고 세미나고 뭐고 꼭지가 돌아 얘기했는데.
또 의외로. 불쾌해하시던 그분은 그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그 직원에게 사과를 하러 오셨다.
아. 제발 그분이 평화로워지셨기를 바란다..
4. 연세가 많으신 고운 사모님이셨는데 몸이 많이 안 좋으셨다.
항상 겸손하시고 말씀이 소녀 같으셔서 나는 그분이 오면 참 좋았다.
검소하다 못해 좀 남루해 보이기까지 한 옷차림으로 단정히 업무를 보고 돌아가시곤 했다.
재력이나 학식이 대단하신 분이었는데 티 내는 일이 없으셨다.
한 번은 내 책상 위 작은 풍난을 보며 너무 이쁘다며 한참을 말없이 보고 돌아가셨다.
근데 그 날은 웬일인지 그분의 몸에서 나는 체취가 다른 날과 좀 달랐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였는데.
워낙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많이 상대해서 그 특유의 체취에 거부감이 있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 날은 온 방의 문을 다 열어놓아도 오랫동안 그분의 체취가 남아 있을 정도였다.
얼마 뒤에 그분의 장남분이 내점을 하셨고 사모님의 안부를 여쭈니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놀랐었다.
그 뒤로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 동네에 건너와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두어 번 그런 체취를 느낀 적이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