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수 Feb 29. 2016

나는 동네 부적응자

엄마모임 은따입니다...


 기분이 좀 상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

 

 

 동네 상가에서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난다.

 - 안녕하세요~ 그래 온수는 무슨 반이 됐어요?

 -'나'반이던가 '다'반이던가.. 그렇던데.. 요.(기억이 살짝 안 나더라고요..)

 - 아뇨 아뇨... 나반이면 장미반이고 다반이면 백합반이고 그렇잖아요..

 - 예? 그건 나중에 아는 거 아닌가요? 우리애가 말이 없던데.

 - 아이고 온수 엄마. 낼모레 개학인데 어쩌시려고..

   우리애는 장미반이에요. 

 -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건가요? 벌써?

 - 아뇨~ 학교에서 알려준 게 아니라요. 애들 엄마끼리 카톡방에서 다 정보를 돌렸죠.

  담임선생님 이름도 다 알고요..

  다 아는데 온수 엄마만 모르시네~

   낼모레 개학인데 여태 모르시면.. 아 제가 집에 가서 알려드릴게요..

 

 아. 죄 많은 엄마가 되는 순간이다. 나 또 은따뺏지 하나를 추가하는구나..

 그러나 여기에서 그만두고 감사합니다~ 했음 됐을 텐데.

 

 - 그게 아니라. 아이가 '나'반이라고만 알고 온 거 같아요. 선생님께서 그 이후 그 반이 무슨 반이 되는지는 아직 알려주지 않으신 거면 개학날 갔을 때 알려주시거나 하시겠지요.. 

 그걸 무슨 수수께끼처럼 엄마들이 알아서 찾아야 하는 건 좀..

 - (당황 모드.)

 - 그러니까.. 제 얘기는.. 학교에서 당연히 알려줬어야 한다는 거고.. 

   아. 아녀요.. 제가 학교에 전화를 해볼까 봐요..

  그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렇다. 그 엄마는 좀 당황하신 채로 집에 가셨다. 아니.. 내가 먼저 집에 왔다.

 오는 길에 또 후회를 한다. 아. 그냥 감사합니다.. 할걸.

 근데 왜 학교에선 그걸 안 알려주고.. 정보 빠른 엄마 한분이 미리 알아 카톡에 정보를 뿌렸나 보다 싶으니 괜스레 성이 난다.

 '나'반이 무슨 반이 되는 건지 모르고 있는 내가 왜 무심한 엄마로 낙인찍혀 얼굴 붉혀야 하는가 말이다.

 

 

 

 나는 이미 은따(은근 왕따)뺏지를 여러 개 달고 있다.

 

 학기초 엄마들 모임에 긴장을 잔뜩 하고 참석을 했을 때.

 그중에 제일은 대치동 학원.

 좀 딸리면 인근 대형학원.

 동네 학원에 가는 아이는 없는 상황이었다.(우리 아이만 동네 학원)


 

 교육문제에 열을 올리며 대치동 엄마는

 아이 뭐 그래.. 별로 잘하지도 않아.. 숙제를 너무 어려워해서 새끼 선생을 뒀어, 좀.. 어렵나 봐..

 대형학원 엄마는 

 빨리 등급을 올려야지.. 걱정이야. 

 동네 학원 엄마는 당연히 할 말이 없었다.


 근데 그 와중에도 참 이상했던 것이다.

 대치동 엄마는 종일 아이를 차에 태워 나르고 있단다. 영어, 수학 말고도 논술, 과학, 기타 등등의 학원들이 다 제각각의 위치에 있어 왔다 갔다 하느라 하루가 다 간다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하는 희생이야 얼마나 숭고한가 하면서도 나는 걱정이 됐다.

 그럼 자신만의 시간은 전혀 없지 않나. 

 일을 하는 엄마들은 아예 불가능한 스케줄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또 가만히나 있지. 

 누군가 슬쩍 보이는 관심질에.

 "아. 저는 면허도 없고.. 일을 다시 하려고 찾는 중이라서.. 우리애는 동네 학원에 다니는데요. 

 실은, 대형학원에 보냈다가 아직 적응을 잘 못해서 나왔어요. 거까지 보내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치동까지 차로 운전해 주고 하는 건 자신이 없네요.. 그렇게까지 할 여력도 없고, 그럼 제 시간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

 


 누가 날 말렸어야 했다.

 아니 내가 날 말렸어야 했나. 

 기어코 저 말을 하고서 엄마모임에서 멋지게 퇴장당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자기야. 애 공부 좀 시켜야지. 정신 차려.." 하는 엄마들의 말에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

 나는 지금은 무심한 엄마는 아니다.

 둔하고 무심한 성격이긴 해도 내 나름대로 아이에게 최대한 관심을 두고 아이의 맘을 살피며 살고 있다.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려고 얘기도 많이 하고, 다니는 학원에서 레벨이 두 단계씩 올라가는 딸아이가 기특하다.

 화목토 가는 수학학원 과제를 하느라 월수금 2시간씩 숙제를 하는 딸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월수금 영어학원은 그나마 학원에서 숙제를 같이 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뺏기진 않는다.

 그 밖에는 방과 후를 2-3개 하는데, 평소 해보지 못했던 하고 싶다던 과목들을 같이 선택해 즐겁게 배우고 있다.

 그 밖에는 책을 같이 본다. 주말마다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을 책을 직접 고르게 하고 몇 권 사준다. 딸아이는 책을 좋아한다.

 

 

 

 엄마들 모임에 어렵게 끼어 방방 놀이방도 한번 갔었다.

 아이가 친구와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좋았다.

 아이들을 지켜보며 엄마들끼리 끝도 없는 수다를 떨다 진이 빠지고야 말았지만.

 직업 체험하는 아이놀이시설에도 같이 갔었다.

 아이들끼리 신나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뒤 엄마들 뒤를 따라다녔었다.

 인근 백화점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연예인 립스틱을 고르고, 어느 엄마가 단골로 간다는 유기농 화장품 코너에도 같이 갔다. 거기서는 고가의 샴푸도 판다고 하는데 효과가 별로이니 사지 말라는 정보도 얻었다.

 브런치를 먹으러 멋들어진 가게에 들어갔는데, 좀 친해져 보려고 사람들을 웃겨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끝날 때쯤 직접 운전하고 온 엄마 중 한 분이 본인이 태워 집에 데려다주신다고 하길래 그 브런치는 내가 샀다.

 

 

 겪어보면 다들 나쁜 사람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다.

 즐기면서 재미나게 사는 엄마들이다.

 아이에게 올인하며 교육에 대해 열성적이고 본인들이 직접 영어공부를 하기도 한다. 사람들 만나 정보도 주고받고, 아줌마지만 유행에도 민감하다.


 

 근데 왜 불편한지 잘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어울려 정보도 주고받으며 우아하게 살면 되겠는데 몇 번의 모임을 끝으로 그만 나는 스스로 맘을 닫아 버렸다.

 

 

 딸아. 엄마는 엄마들 모임이 너무 힘들다.. 그 놀이방들은 엄마랑 가자. 엄마랑 같이 가서 놀자!

 딸아이가 벌컥 운다. 울음을 참으며 얘기한다.

 나는 애들이랑 가고 싶다고.. 그냥 엄마가 엄마모임에 끼면 안 돼..?

 아. 딸아.... 알았어. 미안타. 엄마가 다시 노력해볼게. 엄마가 좀 사회 부적응자야. 이게 사회생활이 영 힘드네.. 알겠어. 알겠어.


 내가 엄마들 모임에 갔다 올 때마다 그 상황들을 신랑에게 설명해주면 신랑은 내 생각의 편협함을 지적하며 비난한다.

 그걸 그냥 넘기지 뭘 생각하고 있어 라든가. 그러게 애한테 더 신경을 쓰라던가.


 너는 모른다. 그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얼마나 머리를 굴리며 감정 조절을 하고 언니 동생 하며 맘을 열어야 하는지.

 아니다. 내가 좀 이상한가 보다. 다들 잘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던데 왜 나만 그 자리가 힘들고 어려울까.

 

 

 

 아~~~ 정말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간절히.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도로 돈은 좀 있어야겠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