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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Feb 26. 2016

그래서 도로 돈은 좀 있어야겠다는..

왔다갔다합니다.


 60%나 싸게 해준다는 문자가 자꾸 들어왔다.

 아낄 구석이 그리 많지 않은 전업주부의 입장이라 머리에 드는 비용부터 줄이려 했었다. 실은 직장 다니면서도 크게 머리에 돈을 쓴 적은 없다. 그저 자르는 정도. 동네 미장원 가서.

 하지만 놀면서도 사람은 또 종종 만나야 하니 머리는 좀 해두자 싶어 주말에 찾아갔다.

 건너편 헤어샾에서는 두배가 넘는 금액에 해주는 볼륨매직을 싸게 해준단다. 기분 좋게 머리를 하고 집에 왔더니 신랑이 머리 좀 이상한데.. 한다.

 당신이 뭘 몰라서 그래. 이게 처음엔 좀 달라붙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된다고.

 

 

 아이와 지내는 시간들이 한없이 감사하다가도 쉽게 또 지치는 날이 있다.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에 집을 빠져나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다이어리도 끄적인다.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정리를 하고 화장실. 손을 씻다 흠짓. 놀랐다.

 아. 평소보다 300배는 못생긴 여자가 거울 속에 있다. 왜 오늘따라 더 못나 보이지. 집에 있다 보니 내가 점점 못나지는구나.

 

 저녁 먹고 신랑이 묻는다.

 "오늘은 뭐했어?"

 뭐 똑같지. 내내 집에 있다 답답해서 카페 갔었는데.. 그래도 기분이 계속 울적한 게 그렇더라. 나 못생겨 보여.. 집에 있으니 주눅 드나 봐...

 "머리 이상하쟎어."

 .....?

 "니 머리 사자 같다고."

 응..?

 

 평소에는 내가 머리를 한 뼘이나 잘라내도 뭐가 변한 줄 모르고 한참 기웃거리는 무심한 남자인데, 이번만큼은 단호히 얘기해준다.

 머리 이. 상. 하. 다. 고.

 

 거울을 봤더니 볼륨(머리끝이 동그랗게 말리는)은 온대 간데없고, 매직(쫙 펴지면서 머리에 쫙 달라붙는. 일명 비 맞은 머리)만 남았다. 게다가 머리끝이 빗자루다.

 어. 이상하네.

 드라이기로 살살 말아본다. 여전히 빳빳한 게 말리질 않고, 점점 더 수세미같이 갈라진다.

 "넌 둔한 거냐. 바보냐. 머리하고 온날부터 그랬쟎어. 이상하다고."

 아.. 나 머리 이상했구나.. 어쩐지. 모습이 이상하다 했더니.

 이리 둔했던가 싶은 게 바보 같아 웃음이 난다. 허허.허허허허허.

 "내일 미장원 가봐. 사자머리라니까. 지금. 머리가 다 탔다고."

 

 

 

 아. 다음날이다. 어쩔 것인가. 따지러 가야 하는데 좀 그렇다.

 하다 보면 머리가 잘 나올 수도 있고, 못 나올 수도 있고. 정성스럽게 해주시던데 뭐가 문제였을까. 나중에 예쁘장한 아가씨가 거들더니, 그때 좀 따끔따끔하더니 그분이 내 머리를 홀랑 태우셨나.

 다시 해도 안된다. 분명 이상하다.

 딸을 부른다.

 엄마 머리 빗자루 같지?

 응..

 그래 꼭 빗자루 맞지?

 그렇다니까..

 

 곱게 화장을 한다.

 기껏 용기를 내서 상의하러(따지러) 갔는데, 그 미장원 선생님이.

 원래 머리끝이 좀 상해있었어요~ 라거나.

 못생겨 보이시는 건,.. 원래 못생겨서 그러신 거잖아요.. 할까 봐.

 우선 머리는 좀 덜 말아서 빗자루 모양새를 한껏 살리고.

 

 

 쓸데없이 긴장하고 찾아간 미장원에선 정성스럽게 AS를 해주셨다.

 매우 미안해하시며 머리를 조금 자르고 다시 파마를 해주신다고까지 하셨다.

 머리는 좀 많이 자르셔도 되는데요.. 파마는 좀. 제가 다시 파마하기가 겁이 나서요..

 클리닉이라도 해드리겠다며 정성껏 머리를 만져주셨다.

 그래도 다른 손님들 생각해서 조용히 웃는 얼굴로 상의드린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서비스 업종이 얼마나 힘들어.. 사람 하는 일인데.. 거 아가씨. 신입이라 그랬나 보지.

 

 -머리는?

 신랑 카톡이 온다.

 월급날인데 돈은 안 보내고...

 -돈은?

 돈이 입금된다.

 -평소보다 많네?

 -연말정산

 -계속 이리 달라해라.

 -남는 돈으로 가발 사라..

 

 아. 제법 근엄하고 우아하게 앉아있다가 혼자 빵 터졌다. 죄송스러워 쭈뼛거리던 신입 아가씨가 좀 긴장을 푼다.

 


 

 사실. 직장 관두고 한동안은 내가 꽤 까칠했었다.

 특히 서비스업종에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될 때,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기본 수준 미만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무척 화가 났다. 그중에 한 번은 겉으로 화를 내며 표현한 적도 있었다. 상황에 정당하게 화를 낸 거였지만, 집에 돌아와 얼마나 기분이 똥 같았는지 모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일로 화를 냈을까. 좋은 말로 할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까칠하고 재수 없게 굴었지...

 내가 받았던 똥들을 품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던진 기분이었다.

 그들끼리 잡담을 하느라 처리하는 일이 늦어진다거나, 최소한 사과는 해야 하는 상황인데 대충 넘어가려는 심보를 보이면 가차 없이 눈썹이 찌푸려졌다. 아. 왜 이래. 왜 이래.

 시간이 한 1년이나 지난 뒤에야 맘이 순해졌다.

 갖고 있던 똥들을 다 내던진 모양이다.

 

 

 더운 여름 땀 뻘뻘거리며 힘들게 길러온 머리가 뭉텅 잘려나갔다.

 다시 짧은 머리로 돌아왔지만 뭐 괜찮다.

 길던 짧던 사실 상관없다.

 어찌 됐던 빗자루만 아니면 된다.

 머리는 좋은 데 가서 해야지.

 미니멀리스트 못 해 먹겠네.

 좋은 머릿 집은 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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