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행복하기
'그만 벌고 편히 살기'
'한 달 120만 원으로 평생 살기'를 실천하고자 작가는 나이 50에 일을 관뒀다.
22년간 세계일보, 파이낸셜뉴스, 머니투데이, 머니워크에서 일했던 기자이고 부인과는 이혼, 아들은 부인과 살고 있다.
"나는 총재산이 5억 2000만 원이 되는 시점에 직장을 그만뒀다.
나이로는 만 50이다. 가진 것 중 4억 1000만 원은 집을 판 돈이다. 1억 1000만 원은 꾸준히 모은 돈이다.
이 돈으로 평생 재무설계를 해 보자.
우선 시골에 집을 짓는데 땅값을 포함해 1억 8000만 원이 들어간다.
2억 5000만 원은 오피스텔 두 채를 살 돈이다. 이 오피스텔에서 한 달에 120만 원씩 나오는 임대료 수입이 내가 앞으로 연금처럼 쓰려는 돈이다. 그러니까 시골에서 나와 동생의 한 달 생활비는 120만 원이다.
이제 남은 돈 9000만 원 중 5400만 원은 아들 몫의 학비다. 1600만 원은 하프 타임 1년 동안 귀촌을 준비하면서 쓸 돈이다.
이제 2000만 원 남았다. 그중 1000만 원은 아들과 배낭여행을 할 돈이고, 마지막 1000만 원은 귀촌 후 비상금이다."
계획이 매우 흥미롭다. 될 것도 같다. 그러다 암에라도 걸려서 투병생활을 해야 하거나 집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따위의 걱정만 집어치운다면 될 것 같다.
내가 수도 없이 재무설계를 하며 자산을 배분하고, 은퇴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시절에 읽은 책이라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나도 실은 그만 벌고 싶었다.
작가는 계획대로 시골에 집을 짓고 120만 원으로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그의 첫 달 가계부.
1. 식비:43만 5920
2. 관리비:20만 5360
3. 교통비:17만 7900(주유 13만 포함)
4. 통신비:7만 7250
5. 경조사:26만 1000(아버지 생신으로 21만 포함)
6. 수강료:11만 5000(기타, 요가 4만 원씩)
7. 회비, 경비:8만 5400
8. 기타:8만 500(카메라 수리 5만 5000, 냉장고 AS1 만 5000)
... 총 1,438,440
좀 초과되긴 했지만 훌륭하다. 어.. 이거 되겠는데.
덜 버는 대신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단순 소박한 삶.
머리 덜 굴리고 마음 덜 쓰는 대신 몸 더 움직이고 가슴 더 여는 평화로운 삶.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얘기가 통한다. 청소하고, 버리고, 자신에 집중하며 단순하게 사는 삶.
실은 이런 추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었다고 한다.
영국 브리스톨에 사는 마크 보일.
아일랜드 출신, 경영,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유기농 식품 분야에서 6년간 일한 경력이 있는 이 작가는 2008년 11월 29일부터 1년간 '노 머니 맨'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전제는 이렇다.
1. 정말로 돈을 한 푼도 안 쓴다.
2. 도시에서 산다. 전기, 수도, 자동차 불가
3. 나름대로 즐겁게 산다.
낡은 이동식 주택을 구해 변두리의 한 농가에 설치한 뒤, 1주일에 9시간씩 3일을 일을 한다. 화장실은 퇴비 화장실, 난방, 취사는 장작으로.
휴대폰과 PC용 배터리는 중고 태양열 전자판 구입. (준비과정에 50만 원)
먹는 것은 야생 채취, 텃밭재배, 유통기한 갓 지난 재품 수거.
물은 강물, 지하수, 샘물.
교통은 발, 자전거.
인터넷은 농장의 와이파이존 이용.
또 한 명 글린 베번. 미국 뉴욕에 사는 작가인데 이 사람은 더 독하다.
부인과 20개월 딸에 강아지까지 같이다.
어찌 됐든 그들이 말하는 건 공통된 이것이다.
돈에 영혼을 팔지 말자!
지구를 더 이상 망가뜨리지 말자!
다시 돌아와서, 우리나라 사람 김영권 님은 행복하게 120만 원으로 한 달을 살며 잘 지내고 계시단다. 돈 덜 드는 여름에 겨울 대비 기름을 사고, 어쩌다 알바로 글을 쓰기도 하며, 그가 지은 집이 좋은 집으로 뽑혀 500만 원 상금도 받으셨단다.
이 책이 2013년에 초판이 나왔으므로 현재까지 그렇게 잘 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잘 살고 계시리라 믿고 싶다.
이 책은 내가 아직 직장에 다닐 때 읽었던 책이다. 나도 제발 그만 벌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을 때 책이라도 읽어야지 싶어 서점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었다.
어차피 인생은 수많은 변수가 있고, 10가지 걱정 중에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일은 1-2가지 밖에는 없다 하질 않았나. 그리고 실은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비할 수 없는 일들이 또 벌어지고는 만다. 그렇다면 좋다. 나는 내 미래를 아주 놓아 버릴 수는 없겠으나 쓸데없는 걱정은 좀 내려놓고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보자.
퇴직 후 실제로 해봤다. 120만 원으로 살기.
나는 솔직히 감자가 다섯 알에 3000원이면 싼 건지 비싼 건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생활비'가 얼마가 드는지에 대해 잘 몰랐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 아이 봐주시는 아주머니께 생필품 살 돈을 드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걸 주말마다 마트 가서 한꺼번에 구입하는 게 다였다.
가계부를 써가며 생활비를 체크하고, 외식을 삼가고, 커피 줄이고, 책 안사고, 사람 안 만나면 대충 되긴 했다.
근데 애가 없어야 가능. 애한테 들어가는 학원비와 간식비, 식비, 준비물, 책값 등의 비용이 전체 생활비의 50%를 넘었다.
어찌 됐든 대충 되긴 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먹을 것 다 먹으면 사고, 냉장고 텅 비우고, 신발도 닳으면 사고, 생활용품 다 쓰면 사고, 옷도 필요 없고 화장도 안 한다.
나는 실은 검은진 1개, 회색 코르덴바지 1개, 티셔츠 2-3개, 카디건 하나로 가을부터 겨울까지 지낸다. 물욕이 없다. 맘에 드는 물건 하나씩만 있으면 더 이상 구매하는 데 오히려 죄책감이 드는 쪽이다.
이사를 많이 다녀 이사 때마다 엄청나게 버리며 정리하다 보니 뭔가 물건을 사는 일에 자연스럽게 회의가 들었고, 최근 미니멀리스트 열풍에 적극 동참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사는 사람끼리 정보를 나누는 카페를 하나 가입했는데, 그중 한 분이 참 좋은 일을 하셨다.
본인도 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불구하고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 매일 가신다. 가시면서 가끔 거기 소식도 전하시고 필요한 물건을 말씀하시는 거다.
아이들 사진도 찍어 올리시고, 이 아이가 뭐가 필요해요.. 부탁해요.. 하면 그 물건이 필요 없어졌거나 여분이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집 앞에 조용히 가져다 놓는다. (아파트 단지라 가능합니다) 그러면 다음 날 그 물건을 받고 좋아라 하는 아이 사진을 올려주며 고맙습니다.. 하신다. 당연히 가슴이 뭉클하고 뿌듯하다.
때로는 기타를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기타가 전달되기도 하고, 세발자전거가 필요한 아이는 자전거를 선물 받았다. 독립해서 나가야 하는 고3 남학생이 정말 아~무것도 없이 고아원을 나가야 한다고 하면 각종 생필품들이 쏟아져 전달되었다. 여행가방에 물건을 실어, 그릇이며 젓가락 숟가락 커피포트 등등.
갓난아이부터 고3까지 100여 명의 아이들이 지낸다는 그곳에는 항상 모든 물건이 모자란다고 한다. 끊임없이 동네 엄마들이 본인의 아이들이 입던 옷을 보내주고, 장난감을 보내줘도 한 달이 채 못 되어 또 글이 올라오곤 한다.
그분을 쫓아 같이 다니기 시작한 여러 동네 엄마들도 같이 글을 올리곤 하는데.
하루는 여자 중학생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왔다. 이 추운 날씨에 겨울 코트와 파카가 없단다. 이불도 너무 낡아 맨바닥에 자기도 하고, 생리대 등은 턱도 없이 부족하단다. 샴푸, 린스도 이름을 붙여 나눠주기 때문에 한 명씩 개수대로 필요하다고 글을 올리셨다.
가슴이 턱 막힌다. 글을 읽던 애엄마들은 다 가슴이 턱 막힐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손님이 오시면 쓸까 말까 한 이불들을 다 빨아 정리해놓고. 안 입는 옷들도 꺼낸다. 쟁여놨던 샴푸도 꺼내고, 생리대도 꺼낸다.
신랑 퇴근할 시간을 기다려 정리해 놓은 물건을 그분 집 앞에 살며시 놓고 온다.
이미 그 집 앞에는 물건이 산더미다!!! 가슴이 뭉클하다.
다음 날, 고맙다는 글과 산처럼 쌓인 물건을 옮기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의 사진이 올라온다.
어떤 가슴 뜨거웠던 이는 봉고차 가득 새 이불을 사서 고아원에 직접 보내시기도 하고, 젖먹이 엄마 한분은 생리대를 냉장고 박스로 5개를 보내셨다. 아.. 좋다. 다 같이 뿌듯하다.
암튼. 덕분에 우리 집은 뿌듯하게 깨끗하게 더 단출해지고, 군더더기 없어졌다. 짐이 꽉 찼던 집이 제법 넓어지기도 했고, 쓸데없는 물건은 사지 않으며, 책도 소장할 게 아니면 바로 팔거나 나눠준다. 아이가 읽던 책과 옷도 모두 보냈다. 책장 하나분의 책이 옮겨졌다.
나는 재무설계를 했었다. 노후에 얼마를 원하시느냐 물어보고, 그 금액에 맞춰 금액을 계산해 연금을 권유했었다.
현재의 생활이 넉넉할수록 그 금액도 당연히 더 커졌다. 사실, 그 금액은 끝이 없다.
나는 시부모님의 봉양으로 내 노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간절해져 은퇴설계 부분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수업도 찾아 들으며 공부도 했었는데 그게 대충 숫자로는 계산이 되는데 또 한편 생각하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국민연금이 그 '예상금액'대로 지급이 되고, 내가 준비해 둔 연금의 금리가 제발 좀 4-5%라도 된 채 유지가 된다면 최소 생계비는 나오게 될 것이다. 병에 걸릴까 봐 실손보험도 해 뒀고, 신랑 갑자기 죽을까 봐 종신에 생명보험도 해뒀다.(당신 죽더라도 나는 내 새끼 키우며 살아야쟎아. 이해하지.) 나 죽으면 알아서 살아. 거까지는 난 모르겠고.
아이의 교육 때문에 내 노후를 망가뜨리진 않는다. 항상 내 노후가 우선이다.
그게 나도 살고 아이도 사는 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아이를 열심히 지원하고 뒷바라지하겠지만, 내 전부를 털어 아이에게 올인하면 망한다. 그렇게 망하는 사람 여럿 봤다. 안타깝다. 그런 자식들이 부모님을 고마워야 하겠지만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져주진 못한다. 서로 힘들어하기만 한다.
저 책을 쓴 김영권 작가가 저 글들을 본인의 블로그에 올렸을 때 비난도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오피스텔 2채에 전원주택이 있으며, 자동차도 굴리며 사는데 그게 뭐가 대단한 거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들도 많을 테고, 이제 갓 직장에 들어갔거나 30대 이전의 사람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실행 불가능이다.
나도 지금 당장은 120만 원으로 살기는 불가능하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시부모님 생활비도 보내야 하고, 실은 전원주택 생활도 싫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밥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지, 일을 하려고 집에 기어 들어가 잠을 자고 나오는지 말이다.
".. 그냥 살아 보는 것이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삶을 긍정한다. 이 순간을 즐긴다.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다. 생활을 한 달 120만 원 한도에 실질적으로 맞춰나간다. 적은 돈으로 즐겁게 사는 쪽으로 나를 규율한다. 도시적 취향과 소비습관을 버린다. 소소한 용돈벌이가 있으면 달갑게 한다. 그 돈은 보너스니까."
그래서 나도 그만 벌기로 결심했었다. 지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