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그녀들과 함께 유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일은 재밌다.
6시면 단 1분도 넘기지 않고 칼퇴를 하고 있고.
어느 날은 종일 대출실행만 해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엔 정해진 시나리오에 맞춰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내 맘대로 전산을 두둘기며 의외의 에러를 찾기도 한다.
내 전 직장에서 15년의 시간을 보내고 퇴사를 할 때.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걸 찾는 과정도. 뭔가를 배우는 시도도 결코 쉽지는 않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좋아하는 일이란 게 무언가 있을지언정. 그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건. 참 힘들고 맥 빠지는 일이었다.
뭔가 기술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라도 뭔가 기술을 익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기술로 밥 먹고 살면 뿌듯하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쭉 있어왔는데.
이번 알바를 하면서 슬쩍 그런 생각도 들었다.
15년 은행에서 보내온 시간 동안 그것도 나름 내 기술이 되었구나.
이렇게 지금 은행 전산시스템을 테스트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다 보니.
뭐 이것도 나쁘지 않군.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 오픈될 은행의 전산시스템을 각각의 업무로 쪼개어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전산을 개발하고 다듬으며 숨 막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나는 그 곁에서 그 전산을 두들겨보며 각종 은행업무 전산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때로 개발자들은 내가 잡은 에러를 하찮게 여기기도 하고. 수정되지 않은 그것들을 다시 지적하면 귀찮아하기도 하며. 그들의 언어를 내가 못 알아들을 때도 있고. 내가 하는 언어를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제 벌써 두 달이 넘어가다 보니. 전산이 익숙해지고 에러가 많이 잡히기도 했다.
때론 그들의 귀챦아함이 느껴져 서운하기도 했다가. 이해되기도 했다가. 어느 날엔 미루는 책임에 대해 따져 물으며 대들기도 했고. 어색한 식사자리 후 급해진 일정을 돕기도 했다.
그분들의 입장에 우리는 기가 좀 센 하찮은 알바 아줌마 일수도 있었겠으나.
몇몇은 우리를 존중해 머리 숙여 인사해주기도 하고.
몇몇은 여전히 우릴 챙기는 걸 깜빡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사로운 감정과 상황들은 중요치 않다.
나는 알바지만 책임감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하려고 하고. 그저 이 일이 내게 주어졌다는 거에 감사해한다.
아침 출근길에 가방을 메고 편한 단화를 신고. 어딘가로 출근해 재미나게 일할 수 있는 이 짧은 상황에 진정으로 감사해하고.
알바치곤 많은 월급을 받으나 스트레스는 없고. 내 상사가 없고. 연말 고가도 없고. 눈치 볼 일 없이 그때그때 할 말 할 수 있어 그것도 좋다.
동료는 있다.
나와 같이 알바를 하는 3명의 언니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모두 50대다.
40이 갓 넘은 나이로 알바시장에 나올 때만 하더라도. 이거 나이가 많아서 좀 그런가 했었는데.
솔직히. 아주 솔직히는. 일하게 된 첫날 나와 같이 일하시게 될 분들이 자그마치 50대의 왕언니들이라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호칭을 어찌해야 하는지. 행동과 말이 조심스러워 '언니'라는 호칭을 입에서 내뱉기까지 자그마치 3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분들도 모두 은행을 다녔었던 분이고. 그동안 간간히 이런 알바를 해왔었다고 했다.
이 중 한 분은 나와 같은 조직에 있었던 분이라 말이 잘 통하고. 옛 동료를 얘기하거나 하면 건너건너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두 분은 다른 은행을 다니시다 나온 분인데. 한분은 퇴직한 지가 10년이 넘었고, 또 한분은 2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나보다 10살이 많거나. 11살이 많거나. 혹은 그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이 왕언니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그러니까 이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내게 참 흥미로운 일일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내 10년 뒤의 모습이거나. 11년 뒤의 모습. 혹은 그 이후의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인생 선배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또래의 여자들을 만날 때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 잠깐 일했던 어느 회사에서.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여성들과 일을 할 때. 나는 참 당황스러웠었다.
그녀들의 언어를 때론 이해할 수 없었고. 어느 분은 대놓고 무례한 행동과 말을 해 날 뜨악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어느 날엔가는. 아.. 이 어린 여자들은 10년이나 나이가 많은 내가 불편하겠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끝내 적응하기조차 싫어 때려치우고 나올 때는. 에라. 니들도 잘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고 저주를 맘속으로 퍼붓기도 했었다.
못난 생각이었지만. 못된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했던 내가. 10년 왕언니들과 일을 하게 되니. 혹시나 나의 행동이나 말이 그녀들에게 '못된 어린것'으로 비추어질까 조심스러웠다.
되도록 말은 적게. 행동은 생각 후에. 막내답게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내 내 개인주의 성향과 애교 없음, 찰지지 못한 친화력 등을 모두 들키고야 말았다.
그녀들은 이미 나로부터 10년 이상의 삶을 더 거친 노련한 언니들이다.
막내 언니는 사근사근하시고 다정해 매일 끝없이 간식을 가져다주신다. 밥을 먹을 때도 비빔밥이 맛나면 한입 꼭 먹어보라며 나를 기다리시는데 그걸 거절했다가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씩 챙긴 음료수를 냉장고에 같이 넣어뒀다가. 문득 목마른 오후에 꺼내어 혼자 마시다 '네 것만 가져왔냐'며 <개인주의 성향의 젊은것>이란 평가도 내려졌는데. 그건 젊은것들의 대체적인 성향인 것 같아 인정해주신다는 분위기였지만. 그 뒤로 나름 조심하게 되었다.
둘째 언니는 시크파. 세심하게 주변 사람을 챙기시나. 때때로 직설화법의 솔직한 말투로 막내 언니를 당황시키시기도 한다.
악의 없이 하시는 말들이라 아무도 상처받지는 않을 꺼라 생각했었는데-내가 좀 그런 부류기도 하고-막내 언니가 당혹스럽게 받아들이시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고는. 나도 직설화법 말투에 좀 주의를 하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나이를 말씀해주지 않으신 최고참 왕언니는 소녀소녀하신데. 거진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덕분에 깜짝 놀랐던.
성격도 소녀소녀 옷차림도 소녀소녀 하신 데다 본인 스스로도 철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긴 생머리는 힘이 없어 푸석해 보였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녔는지 셋째 언니가 헤어 에센스를 발라보라고 조언을 하셨고. 그다음 날부터 왕언니의 머리는 다소 윤기가 나고 조금씩 좋아져 보여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이가 들어 왜 여성들의 머리가 점점 짧아지고 뽀글뽀글해지는 건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되었다.
딸과 옷을 같이 입으신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도 딱 보면 그렇게 보이는 옷차림이라.
어느 날엔 조오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젠 왕언니의 착한 심성과 해맑은 천성에 웃음이 난다.
나는 언니들에게 애교 부릴 줄 모르는 무뚝뚝한 막내이자.
여기저기 삐걱거리며 아파하는 그녀들의 노화를 놀려대는 싸가지없는 막내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5분 먼저 달려 나가 자리를 잡아두지만. 맛나다며 먹어보라는 비빔밥 한 숟가락을 냉정하게 거절하며 맨밥을 퍼먹곤 "취향이에요 존중하시죠"한다.
나는 싸가지. 개인주의. 냉정녀. 등의 소리를 들으며 정체를 완전 들통 냈지만.
40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이쁜이'로도 가끔 불리고. 피부가 좋다거나. 머릿결이 넘 부럽다는 찬사를 들어보기도 했다.
내 엄마도 내게 한번 해주시지 않았던 '이쁜이'라니. 허허. 웃을 수밖에.
10년을 더 산 언니들의 내공을. 그녀들의 배려심을 본다.
찰나의 상황에 배우게 되는 인생공부랄까.
나는 이래저래 여기서. 또 뭔가를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두 달이면 끝날 줄 았았던 일이 한 달 더 연장이 되고. 또다시 보름이 연장되었다.
딸아이의 방학과 맞물려 어찌해야 하나 고민스럽지만. 이 사랑스러운 언니들을 두고 나 혼자 관두기도 뭐하고. 이제와 관둔다고 한 달 남겨두고 사람을 뽑을 것 같지도 않아.
어지간하면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임하고 있다.
알바비도 많이 받는데 돈값도 해야 하고.
이 사랑스런 언니들과 또 언제나 다시 만나 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에 재미나게 읽었던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라는 에세이집에서 이 언니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혼자 킥킥대곤 했었다.
(이 에세이를 쓴 이도 50대의 중년, 일본 여성이다)
"울면서 말하는 중년 여성은 귀엽지도 가엾지도 않다."
"첫 기미, 첫 흰머리, 첫 잇몸병.. 등을 겪을 때마다 일일이 충격받았고 무언가 대책을 세워 극복하려고 애도 써 봤다.."
"중년끼리 하는 단체 여행은 못할 짓이라고 여겼던 나였지만, 이는 중년이었던 적 없는 사람의 방만한 편견이었다."
"젊었었을 때 나에게 중년의 마음이란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이렇듯 중년기란 회귀하는 나이다. 문득 동창회나 나가 볼까 기분이 들고 옛 친구들과의 교제가 다시 시작된다."
"중년도 너 같은 인간이야. 그리고 중년으로 사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어..."
일도. 사람도.
모쪼록.
잘 마무리됐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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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렇게 표현할 걸 언니들이 알게 된다면.
음.
이 좋은(?) 머리털을 다 뜯길지도 모르겠다는.